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판정제
  4. 특징

4.1. 시합

4.2. 연무

4.3. 참선

4.4. 봉술

4.5. 결론

  1. 현황

1. 개요 ¶

검선도(劍禪道)

대한검도회의 창립자이자 검도 9단인 고 서정학(徐廷學) 선생이 1997년 1월 창시한 무도 단체이다. 서정학 선생의 호 '창암(暢巖)'에서 따와서 '창암류 검선도'라고도 부른다.

검도 9단으로 오랬동안 검도를 배워온 서정학 선생이 그 동안 익히고 깨우친 검리에 바탕을 두며, 선(禪)을 정신 수양으로서 도입하였다고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몇몇 기술은 서정학 선생이 면허개전을 얻은 일본 고류무술 신카게류(신음류)에서 나온 것도 있다고 한다.[#](http://www.keomsundo.org/cmboard/content.asp?boar d=gonggi&idx=74&page=15&num=1)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서울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특이하게도 본부도장이 서울이 아니라 대전에 있다.

한국검선도연맹 홈페이지
창암류 검선도 카페
검선일여 카페



2. 역사 ¶

1996년 12월 10일 한국검선도 본원이 개원되었고, 1997년 1월 28일 무도단체로 창립됐다.

서정학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검도를 시작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검의 수련을 멈추지 않은 무도가이다. 그러나 본인이 하는 검도라는 무도가 일본의 무도라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고, 이에 한국형 검도를 따로 만들어보고자 하여 노년에 이르러 드디어 새로운 한국형 검도의 무도 단체를 차린 것이다.

검선도 단체의 설립은 1996년이지만 검선도 자체에 대한 연구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뤄져왔다. 90세 평생동안 검도를 수련해오며 오랜 기간동안 기술과 규칙 등을 꾸준히 개량 및 발전시키고 정립시켜 지금의 검선도를 만든 것이다.

검도가 일본 무도이며, [1] 대한검도회를 창립하고 회장직도 역임한 서정학 선생조차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 협회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 그냥 따로 무도 단체를 새롭게 창립한 것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대한검도회와 결별하고 검선도 단체의 성장에만 매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서정학 선생은 끝까지 자기 자식과도 같은 대한검도회를 저버리지 못하고 검도와 검선도를 병행 발전시키고자 했다. 자세한 내용은 검도 항목의 6.관련사건 참조.

이러한 역사 때문에 검선도는 해동검도 같은 다른 무술과는 다르다는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검선도 역시 크게 '검술'의 영역에 포함되는 하나의 '검술 유파'로서 의식하고 있다. '창암류'라는 이름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학 선생은 2005년 7월 2일 새벽 1시에 89세로 사망하였다.[#](http://www.keomsundo.org/cmboard/content.asp?board=freebd&i dx=5158&page=50&num=1168) 그 뒤를 이어 아들 서민석(전 대한검도회 사무국장, 검선도 부회장)이 창암류검선도 제2대 총사가 되었다.

3. 판정제 ¶

검선도는 검도의 한판제와 달리 점수제를 쓰고 있다. 머리, 허리, 목(찌름/베기)은 각각 2점, 손목, 어깨, 허벅지는 1점씩이며 합계 3점 이상이 되면 승리한다. 다시말해 손목 득점을 두 번이나 했어도(검도였으면 끝났을 상황) 머리 한 방으로 동점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

이는 진검이라고 가정했을 때 베이면 즉사하는 부분은 2점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1점으로 책정한 것이다. 좀 더 실전에 입각하여 짜여진 판정체계라고 볼 수 있다.

4. 특징 ¶

4.1. 시합 ¶

검선도는 기본적으로 검도와 유사하나 격자부위가 더 많고 다양하기에 획일화된 방식의 검도 시합보다 훨씬 복잡한 사고를 요한다. 검도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검도의 격자부위가 4군데뿐이더라도[2] 이들 공격의 컴비네이션 조합에 따라 수십가지 기술이 파생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격자부위가 2배로 늘어나면...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큰 특징이라면 검도에서는 사장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방식의 격자법 및 사선으로 내려긋는 격자법 등이 허용되기에 검도에서는 본(本) 수련에서나 나오는 하단 자세나 팔상 자세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스포츠화 이전의 무도로서의 기술들도 사장되지 않고 수련한다.

호구는 기본적으로 검도의 호구와 비슷하나 유효격자 부위에 표식이 붙어있다.검선도 호구의 특징

4.2. 연무 ¶

기술면에 있어서 검도에서 제일 말이 많았던 검도의 본을 빼버리고[3] 서정학 선생이 검을 정리한 '염상이합도' 라는 검술이 수련체계에 들어가 있다.

염상이합도는 가상의 적과 상황을 상정하여 혼자 연무하는 검술 형태로 거합도와 외형적으로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세히 보면 보법, 발도시 행하는 기술들, 좌우손을 바꾸며 베는 파지법, 베는 부위 등... 많은 부분들이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정좌하는 일이 잦았던 일본과는 문화적 시대적 상황이 다른 것을 고려하여 거합도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연무한다

서로 합을 맞추는 쿠미타치도 새롭게 짰다. 검도의 형(型)이 유급자, 유단자 구분없이 7가지만 있는데 비해 검선도의 형은 수련자의 레벨에 맞추어 유급자용 5개, 유단자용 5개로 나누어 편성했다.

4.3. 참선 ¶

또한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참선을 도입하여 같은 검을 쓰는 기술이라도 검을 쓰는 민족의 정신을 다르게 하려는 시도를 했다.

매우 좋은 시도이나 비판도 만만치 않은게 일단 창시자인 서정학 선생의 무도 기원이 일본의 검도라는 점과 선(禪)의 수련이라는 것도 이것이 딱히 왜색과 한국색을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이점은 서정학 선생이 어릴때부터 자라며 검술과 참선을 배운 것이 일제시대 그것도 일본이었기에 무엇하나 일본의 영향을 받지않을 수 없었다는 면에서 볼 때 참작의 여지는 있다. 또한 검선도에서 가르치는 참선은 서정학 선생의 참선이 아니라 박희선 박사의 생활참선이라고 하니 크게 문제는 없을지도.

4.4. 봉술 ¶

서정학 선생은 1977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그동안 검도수련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봉술과 쌍봉술을 연구,개발하였다.
젊은 시절 일본에서 검도를 수련할 때나 그 후에 누구에게도 봉술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검의 장점과 봉이 사용하는 양쪽 끝을 사용하여 검과 봉의 장점만을 뽑아내 만든 자신만의 봉술이라 할 수 있다.
연구시작 1년 후인 1978년부터 당시 검도 3단이었고, 27살인 큰아들에게 봉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였다 한다.
이 봉술이 현재 창암봉술이라 명명되어 교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4.5. 결론 ¶

검선도는 검도 항목에서 볼 수 있는 현재 검도에 대한 비판점을 받아들여, 많은 부분을 개선한 수련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검선도가 한국색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딱히 한국적인 검도라기보다는 왜색만 배제시키고 공통된 검리를 발전시킨 성향이 크다고 평하기도 한다. 서정학 선생의 실력과 검력[4]이 있기에 무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함부로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5. 현황 ¶

수많은 신흥 무술단체들이 얼마 안되는 역사를 감추려 전통무술임을 자처하는 행동을 하는데 비해 검선도는 검도를 기반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검술임을 당당히 밝힌다. 그만큼 서정학 선생의 존재와 검선도의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다.

다만 '고유의 무술'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있다. 이는 서정학 선생이 만든 염상이합도를 포함한 검선도만의 기술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니 천 년 전통 운운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표현에 문제가 있을진 몰라도 실제로 역사적 정체성에 있어 아무런 거짓이나 왜곡없이 깨끗하므로 이와 관련된 문제로부터는 떳떳한 단체이다.

월단(단증 남발)이나 단기 지도자연수가 일절 없기로도 유명하다. 검선도 창립 초기에 많은 해동검도, 합기도 사범들이 단기 지도자연수를 받으려고 찾아왔다가 백띠부터(...) 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에 고개를 휘휘 젓고 돌아갔다고... 극 초기에는 검도 단증 만은 검선도 단으로도 인정해줬지만 지금은 그런거없다. 검선도의 보급이 더딘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세력이 크지 않아 대중 인지도가 낮고 검도와의 차별화가 겉보기에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기에 아무 정보없이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냥 사이비검도로 오해하기 딱 좋다.
이 점은 서정학 선생이 고인이 되신 현재, 검선도 지도자들이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로 보인다.[5]

서정학 선생은 2003년 쯤에 이미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검선도 총사로서는 활동 기간이 5~6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의 '단체'가 온전하게 자리 잡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에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검선도 창립 10여 년 전부터 평소 선생이 생각하고 연구하였던 기술과 검리, 염상이합도는 후계자에게 전수하여 현재 검선도에서도 수련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데 그다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검선도내 고단자 사범들은 세력 키우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상태이며, 검선도의 전파보다는 창암류[6] 검선도의 맥을 잇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대놓고 말하기 때문이다. 무도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는 높이 살만하나 아직 인지도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보급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있다는 점은 결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일이다. 당장 포털이나 유튜브에 검색만 해봐도 시합 및 연무 동영상이 넘쳐나는 타무술과 달리 그 흔한 동영상 하나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검선도는 사이비 검도[7]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위에도 서술했듯이 속성 단기 지도자연수 등이 일절 없어서 지도자 양성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큰 원인 중 하나이다. 서민석 총사는 단기연수나 월단으로 인한 사범육성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절대 서두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수많은 사이비 검술단체가 제각기 한국의 전통검술을 표방하며 난립하고 있는, 당장 검도만 해도 슬슬 태권도처럼 유치원화, 종합학원화하며 변해가는 세태에서[8] 무도의 가치와 무도인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태도는 사실 매우 원칙적이고 바람직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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