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Большой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имени П. И. Чайковского, 영어: Tchaikovsky Symphony Orchestra of Moscow Radio

러시아의 대표적인 관현악단. 모스크바를 본거지로 하고 있으며, 1993년 이전까지는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간혹 '모스크바 방송' 을 빼고 그냥 '차이콥스키 교향악단' 이라고 약칭하기도 하며, 러시아어 공식 명칭은 'P.I.차이콥스키 명칭 대(大)교향악단(Grand Symphony Orchestra named after P.I.Tchaikovsky)'. 홈페이지

Contents

1 연혁

2 역대 음악 감독

3 특징

4 여타 명칭들

1 연혁 ¶

1930년에 소련 국영 라디오 방송의 산하 관현악단으로 창단되었고, 초대 음악 감독으로 알렉산드르 오를로프가 임명되었다. 오를로프는 1937년에 니콜라이 골로바노프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재임하면서 합주력 정돈과 다양한 연주곡 확충에 주력했고, 골로바노프도 비슷한 노선으로 악단을 이끌었다.

1941년에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잠시 동부로 옮겨 활동하기도 했지만, 전세가 역전된 후에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공연과 방송 출연을 속행했다. 골로바노프는 종전 후에도 195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직위를 유임했고, 사후 알렉산드르 가우크가 제3대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다. 가우크가 1961년 건강 악화로 퇴임한 후에는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가 후임으로 들어갔다.

로제스트벤스키는 부임 당시 막 서른 살이 된 뉴비였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쌓은 지휘 경험과 여느 소련 지휘자 이상으로 폭넓었던 레퍼토리를 가지고 악단의 체질을 크게 바꾸었다. 특히 스탈린 시대에 공연이 크게 제한되었던 서유럽의 근현대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방송용에 국한되었던 녹음 활동도 국영 음반사인 멜로디야를 통한 음반 제작용 스튜디오 녹음으로 넓혔다.

1974년에 로제스트벤스키가 스톡홀름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이임한 뒤에는 역시 당시 32세의 신예 지휘자였던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w iki/%EB%B8%94%EB%9D%BC%EB%94%94%EB%AF%B8%EB%A5%B4%20%ED%8E%98%EB%8F%84%EC%84%B 8%EC%98%88%ED%94%84)가 후임으로 발탁되었고, 페도세예프는 1991년 소련 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2011년 현재까지 30년 넘게 음악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소속되어 있었던 소련 국영 방송이 해체되면서 심각한 재정 문제를 겪었지만, 1993년에 러시아 문화부에서 악단 명칭을 현재의 것으로 개정하면서 국가 예산을 투입해 간신히 안정화시켰다. 이후에도 계속 민간 기금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2011년 현재 러시아의 유력 정유 업체 중 하나인 루코일(Lukoil)이 스폰서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2 역대 음악 감독 ¶

이외에 2000년부터 페도세예프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니스 로토예프가 제2지휘자라는 직함으로 출연하고 있다.

3 특징 ¶

1993년 개명 때 러시아 작곡가 중 가장 유명한 차이콥스키의 이름이 들어갔는데, 그 만큼 이 악단의 공연과 녹음에서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교향곡 1-6번 여섯 곡과 협주곡 세 곡, 기타 관현악 작품이 든 DVD도 냈을 정도다.

물론 차이콥스키만 줄창 하는 것도 아니고, 이외에 림스키-코르사코프보로딘,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등 다른 모국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도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방송국 소속이었던 만큼 다른 악단보다 녹음 자료가 대단히 풍부한 편인데, 다만 상업용 녹음은 골로바노프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가우크 재임기 까지는 주로 러시아/소련 음악 위주로 공연하다가 로제스트벤스키가 들어오면서 폭이 크게 넓어졌고, 페도세예프도 기존의 자국 레퍼토리들을 중시하면서 독일계 고전 연주곡들의 연주 역량을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다.

상업용 녹음이 아닌 방송 녹음도 소련 붕괴 후 대량으로 풀리면서 신속히 음반화가 진행되었는데, 다만 이 시장에 뛰어든 음반사들이 오래 못가고 주저앉거나 버로우 타면서 물량 공세와 절판/폐반이 빠르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후새드. 그래도 음반 제작은 소련 해체 후 돈이 궁해진 악단 입장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작업이고, 1980년대 초반에는 이미 10여 년 전에 디지털 녹음 기술을 상용화한 일본의 협력으로 소련에서 첫 디지털 음반을 발매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 이후로는 상태가 영 좋지 않았던 멜로디야 대신 서구의 이런저런 음반사와 컨택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1998년에는 한국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백건우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전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의 녹음을 미국 레이블인 RCA에서 출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참고로 한국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 작품 전곡을 녹음한 최초의 사례였다).

주요 공연장은 이름에 걸맞게 차이콥스키 콘서트홀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모스크바 국제 예술회관 등 다른 공연장도 부정기적으로 대관해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다소 편성이 작은 고전 작품이나 실내 관현악 연주회의 경우 야우자 궁전의 소규모 홀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정 지원이 썩 안정적인지 국내외 순회 공연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창단 80주년 기념으로 영국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에서 공연한 바 있다.

4 여타 명칭들 ¶

일단 서구에서는 개명 이전 명칭으로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이 가장 많이 쓰였지만, 소련에서는 별의별 유사 명칭들을 영어 방송이나 음반에 표기하는 바람에 꽤나 혼란스럽기도 하다. 일단 표기되는 사례를 다 열거해 보면 이렇다;

얼핏 보면 다 달라 보이는 명칭이지만, 모두 같은 단체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비슷한 이름의 단체가 사칭이나 헷갈림을 유발하는 다른 악단들과 달리, '소련' 이나 '전 연방' 같은 호칭은 소련 붕괴 후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어서 짝퉁을 식별하기가 훨씬 쉽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어떻게든 사기치려는 놈들은 별의별 이름으로 유사 단체를 만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