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1. 후한 말의 인물로 삼국지의 인물 손부인

1.1. 개요

1.2. 생애

1.3. 삼국지연의의 손부인

1.4. 미디어 믹스

  1. 手婦人

1. 후한 말의 인물로

삼국지의 인물 손부인 ¶

孫夫人

1.1. 개요 ¶

후한삼국시대의 오나라 황제 손권의 누이동생이며 실존인물. 생몰년도 불명.

손견의 딸이며, 손권의 여동생이자 유비의 부인. 유비 부인들 중 최강자.여자(女子)라고 쓰고 맹장(猛將)이라 읽는다.
오빠인 손권의 정략에 의해서 어린 나이에 유비와 결혼을 했으나, 결혼 기간은 몇 년 되지 않는다.
유비의 경력에 이혼을 남긴 유일한 여인.



1.2. 생애 ¶

나이는 분명하지 않으나 적벽대전이 일어난 208년에 손권(182년생)은 26세였으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손부인은 20대 중반. 손견이 192년에 죽었으므로 손부인은 결혼 당시 최하 16세가 된다. 대체로 20세 전후로 보는게 타당할 듯.

삼국지연의로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기록에 따르면 실제 손부인은 유비를 싫어했던 듯하다. 유비도 그런 부인에게 정을 붙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손부인과 유비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유비는 당시 이미 나이가 꽤 많았지만, 손부인이 떠난 뒤에도 오의의 여동생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여 유리유영 두 자식을 보았기 때문에 생식능력이 상당히 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결혼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이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불임일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자식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부부의 사이가 나빴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부 사이가 나빴다는 사실은 유비를 멀리했던 손부인의 행동에서 찾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성격이 괄괄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기가 아주 센 여자였던 듯하다.[1] 손권이 자신의 누이동생을 선주에게 시집을 보냈을 때, 그 누이동생은 재주가 있고 민첩한 반면 성품이 강하고 사나워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 누가 강동맹호의 혈육 아니랄까봐 싸움도 무지하게 잘했다. 그런 데다가 시녀 백여 명으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하여 늘 자신의 주변에서 시립하고 있도록 해서, 선주(=유비)는 내실로 들어갈 때마다 늘 마음 속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밀덕후 이 때문에 유비는 조운 없이는 손부인을 만나러 가지조차 않았다.

즉, 유비네 쪽에 시집와서도 무기를 든 시녀 백여 명을 마치 사병처럼 거느리고 다니면서 기세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유비의 부하들도 과연 질려버릴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손부인은 굉장한 위험인물이었던 셈인데, 가장 무방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는 주군의 사저에 100명이나 되는 무장 병력을 제멋대로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녀들이 여자라고는 해도 칼을 차고 다니게 할 정도면 나름대로 무술 훈련은 시켰을 것이 분명하고, 유비가 내심 두려워할 정도라면 단순히 장난으로 무장시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비 자신도 침소에서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으므로 손부인이 마음만 먹으면 유비를 죽이거나 유비 세력의 중심부에서 막대한 인명 살상을 벌일 수 있는 미친 짓도 얼마든지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손권의 공주들도 꽤나 기가 셌지만 손부인이 벌인 짓은 이미 당대의 상식을 가볍게 초월할 정도(...).

사실 손부인이 애를 낳았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데, 감부인은 사실상 본처 역할을 하긴 했지만 명목상은 이라 유선이 즉위한 뒤에야 정처로 여겨지고 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손부인이 유비의 아들을 낳았다면 동오 측에서는 "아두는 서자니까 무효고, 손부인이 낳은 아이가 적자이므로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촉한에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진짜 이랬다면 차라리 유선같은 쓰레기가 황제 안되니 야! 신난다~ 사실 동오로서는 정처로서 손부인을 시집 보냈으니 그 자손을 후계자로 해야 한다는 정도는 충분히 정당성이 있는 요구이며 동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손부인이 애도 안 낳고 그냥 이혼해서 돌아간 것이 촉한에게 크나큰 불행 다행이였다. 하지만 그 맹호같은 손씨가문의 혈통이 유비의 후계자로 이어졌더라면 촉한은 폭정으로 점철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손호가 아주 좋은 예다.

기록에는 성격과 외모 모두 오래비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어느쪽 오래비인지... 메기턱과 풍성한 수염에 긴팔과 짧은 다리를 가진 손권을 닮았으면 끝장이다 하지만 뽀얀 피부에 미남인 손책을 닮았으면 나름 괜찮기도 하다. 유비도 연의 설정상 팔이 매우 길었다니 그건 닮았네. 그런데 수염이 없다는게 문제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와는 달리 정사삼국지에서는 손부인이 오빠인 손권의 권세를 믿고 유비에게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고 하고, 오로 돌아간 것은 맞지만 거짓 편지 때문에 돌아갔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다. 또한, 손부인이 오로 돌아간 뒤의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릉에서 유비가 죽었다는 오보를 듣고 연의처럼 투신자살했다는 설도 있지만, 유비에게 오만하게 굴었다는 정사의 기록을 보면 당연히 가능성은 제로다. 돌아간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에는 여인의 정조에 심한 제한이 없었다는 점으로 보아 재혼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일족들처럼 오래지 않아 죽은 건지도 모른다.[2]

{{|다시 엄연의 자치통감보(資治通鑒補)에서 이르길 : 애초에, 오가 화친을 구하고 나서, 오왕 손권은 곧 그의 여동생 손부인을 보내 한으로 돌아가게 했다. 난강(灤江)에 이르니 소열제가 죽어, 손부인은 이에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토박이가 이를 불쌍히 여겨, 교기(蟂矶)에 대(台)를 쌓아 제사 지냈다.

또한 일통지를 살피길 : 교기는 무호현(蕪湖縣) 서쪽 7리 강 가운데로, 물가 위에 영택부인사(靈澤夫人祠)가 있어, 속세에선 소열부인인 손권의 여동생이라 전한다. 황정견(黃庭堅)의 글에서 이르길 : "물가 위에 영택부인묘(靈澤夫人廟)가 있으니, 촉선주의 손부인을 이곳에 장사지냈다고 대대로 전한다."

노필이 살피길 : 손부인에게 이와 같은 절렬(節烈)함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진지(陳志)에선 싣지 않은 것인가? 배주(裴注)에서 신기한 이야기를 즐거이 모았으나, 또한 한 글자도 없다. 송(宋)의 소상(蕭常)의 속후한서(續後漢書)에서 손부인을 위해 열전을 세우나, 또한 언급하지 않았다. 일통지에서 민간에서 전하는 바라고 이르는 것이, 진실로 참된 지식이다.

고염무(顧炎武)가 이르길 : 손부인은 오로 돌아간 후 죽은 곳을 알 수 없으니, 교기의 전해지는 바는 거의 망령된 것이다.|}}

1.3. 삼국지연의의 손부인 ¶

삼국지연의에서 몇 안되는 비중이 높은 여성으로, 정사와 달리 유비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손견의 딸이지만 손책, 손권과는 배다른 남매다. 손책의 어머니의 동생인 오국태의 딸. 자매덮밥을 실현한 손견이라. 이름은 손인(孫仁)으로 나오지만, 사실 이건 손권의 남동생인 손랑(孫郞)의 별명이다. 연의에서 잘못 알고 집어넣은 듯하다. 손랑이 TS당함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손책, 손권과는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정략결혼을 보낼 때 오국태의 감정이 한층 더 악화된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배다른 남매라고 내 새끼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느냐는 것.(원래 고우영삼국지에서 나오는 해석이다.)

연의에서도 역시 괄괄하고 기가 센 성격으로 무장들인 오빠들 사이에서 커서 자신도 이를 따라해서 시녀들을 무장시키고 병정놀이를 즐겨했다고 설정되어 있다. 성격 알만하다. 하지만 유비가 시녀들이 칼차고 다니는걸 두려워하자 평생 전장에서 산 남자가 잠자리에 칼이 있는걸 무서워하냐고 웃으면서도 유비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녀들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손권과 주유는 손부인으로 낚아서 유비를 결혼을 핑계로 오나라로 데려와서 죽이거나 혹은 억류하려고 했으나, 이는 형주에 남아 있었지만 통찰력 있던 제갈량과 호위로 따라온 조운에 의해 계책이 간파되어 실패로 끝난다. 마지막에는 암살자들을 보내서 죽이려 하지만 조운의 무력이 워낙 뛰어난데다가 그 사이에 유비에게 홀딱 반해버린 손부인이 "니들이 감히 내가 남편 따라 가는 길에 방해를 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대실패. 낚시하려다가 여동생만 털린 손권 주유 지못미 수준이 되어버렸다(...).

고우영 삼국지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비롯한 일부 판에서는 오로 향하기 전에 이미 제갈량이 조운에게 '중요할 때 펼쳐보라'고 주머니 세 개를 건네주고, 결정적일 때마다 조운이 주머니를 열어서 그 내용을 유비에게 진언하는 장면이 있다. 오군이 쫓아올 때 가시덤불과 해일과화재를 일으켜 추격을 막는 매직 아이템 모든 걸 내다보는 초인적인 제갈량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

다만 이 부분은 대부분 창작으로 국태부인과의 연회장으로 쓰인 감로사도 뒤에 만들어졌다.[3]

나중에 한과 오의 관계가 틀어지자, 손권은 형주를 공격하기 전에 인질처럼 되어버린 여동생을 되돌려 받으려 하고 계략을 써서 어머니 오국태가 아프다는 거짓 편지를 보낸다.

손부인은 어머니의 병문안을 하러 오나라로 떠나는데, 하필 이 때 장래에 촉한을 구하기 위해서 유비의 아들인 아두를 오로 데려가려 한다. 그러나 눈치 없는 조운장비가 나타나 가로막은 탓에 재앙덩어리 아두만 도로 돌려보내고 혼자 오나라로 가버렸다. 일부 판본에서는 조운이 이 장면에서 손부인의 시녀들을 상대로 무위를 떨치는데, 그래도 여자라서 그런지 시녀들을 참살하는 장면은 없다.

오로 돌아간 뒤에 유비를 기다리다 유비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오로 쳐들어오자 누구보다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랬으나 이릉전투 뒤에 유비의 사망 소식을 듣자 장강에 투신 자살한다.

국내에 널리 퍼진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손부인이 유비에게 조금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고, 유비의 세력이 손권에 비해서 별볼일 없다는 이유 때문.

하지만 이는 전반적인 삼국지 연의의 기조와는 동떨어진 해석이기 때문에, 적어도 '삼국지연의에서는 손부인이 유비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짓 편지를 받았다는 부분과 장강에서 투신 자살한 부분은 연의의 창작이지만, 굳이 작품 바깥의 기록을 끌여다가 작품 내부를 어지럽힐 까닭은 없다.

항상 허리에 활을 차고 다녀서 궁요희(弓腰姬)라는 별명이 있었다는 말이 유명하며, 유독 한국에서는 이 표현이 연의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으나[4] 이는 연의에서 나온 표현이 아니며 일본의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 처음 나온 표현이다. 아무래도 손상향이라는 이름 부분이 창작인지에 대한 여부가 유명한 나머지 덜 유명한 궁요희는 다들 원래 있는 표현인가보다 하고 넘어간 듯(...).[5]

1.4. 미디어 믹스 ¶

2. 手婦人 ¶

1.의 인물과 죽부인 등에서 따와 합성한 듯한 은어. 손장난에 필수적으로 동원되는 뭇 남성들의 영원한 소울메이트를 뜻한다(…). 그리고 이게 없으면 당연히 장애인에 해당한다.

크리스마스 때 솔로들을 위안케 해주는 진정한 반려자로도 통한다. 그 뿐이랴, 심지어 밥도 떠먹여주고 코푸는 것도 도와주고 응가까지 닦아주는데 양처도 이런 양처가 따로 없다. 그러니 부디 자기위안용으로 너무 혹사시키지 말고 진짜 여자친구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안될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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