雙手刀

무예도보통지 2권 맨 처음에 기록된 검술. 중국에서 수입한 검술로 중국에서는 장도(長刀)[1]라 하여 왜구들이 쓰던 노다치(野太刀)를 대적하기 위한 무기 중 하나로 개발한 칼로 하는 검술이다. 한자의 의미만 보자면 쌍수, 양손으로 잡는 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통 무예도보통지의 가장 큰 칼을 다루는 기술을 의미한다. 해동검도에서는 쌍수검법 1번에서 12번까지가 유급자 과정이다[2] 무예도보통지에는 아래와 같이 서문이 기록되어 있다.

"原

척계광이 말하기를,
"쌍수도는 날의 길이가 5척인데, 밑부분 구리로 싼 날(銅護刃)이 1척이며, 칼자루의 길이는 1척 5촌으로 전체의 길이는 6척 5촌이며, 무게는 2근 8량이다. 이는 왜구가 중국을 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이 칼을 가지고 춤추듯이 뛰어, 섬광이 번듯이는 앞에 우리 병사는 탈기가 되어 버렸다. 왜구가 한번 뛰면 1장여밖에 있는 조우자가 양단이 되어 버린 것은 무기가 예리하고 두 손을 사용하여 힘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만이 전용으로 쓰고 있으니 막을 수가 없고, 오직 조총수만이 가히 겸할 수 있다. 적이 멀리 있으면 총을 쏘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쓴다."

본명은 장도이며, 지금 쌍수도라고 부르는 것은 쌍수를 사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검제(劍制)(법)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요도로 대신 연습한다.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장도는 왜놈들의 체계이다. 보병에게는 매우 날카로우나 옛날에는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중화고금』의 주에 이르기를, "「한세전」에 고제(高帝)께서 백사(白蛇)를 베었는데, 칼 길이가 7척이었다."

『한서』「광천혜왕월(廣川惠王越: 한 경제의 아들)전」에 "손거(孫去)가 7척 5촌의 칼을 만들었다."

『후한서』「풍이전(풍이전)」에 "수레(車駕)가 하남에 이르러 전송할 때 7척되는 옥구검(玉具劍: 옥으로 장식한 칼)을 하사했다."

『도검록(刀劍錄)』에, "주나라 소왕(昭王)이 다섯 검을 주조하여 오악(五嶽)의 이름을 붙였다. 진악(鎭嶽)이라 이름한 것은 길이가 5척이고, 석계룡(石季龍: 오호 후조 석호의 자가 계룡이다)의 칼 길이는 5척이고, 모용수(慕容垂: 오호 후연)의 두 개의 칼의 길이는 7척이며 웅(雄: 수컷)하나 자(雌: 암컷) 하나이니, 장도의 내력이 오래 되었다." "

척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굉장히 큰 칼로 서양의 투핸디드 소드를 생각하면 된다. 칼몸 아랫부분에 구리판을 덧대어 잡을 수 있게 했는데, 이를 동호인이라고 한다. 쯔바이핸더와 비슷하게 운용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무예도보통지를 만들던 시절에는 실전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쌍수도와 당시 조선에서 쓰던 요도의 길이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3] 이것을 요도로만 운용한다는 기록을 보면 다른 무기들이 있어 이미 기법 자체가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척도의 차이로 의견이 분분한 것이 무예도보통지인데, 무예도보통지는 주척으로 통일하여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 타당성 있는 의견이다.
척도를 영조척으로 다르게 측정한다면 2m에 가까운 길이에 2근 8냥이라는 무게를 맞추어야 하므로 칼날이 종잇장처럼 얇게 된다. 이렇게 만들 경우, 칼날의 면을 지면과 수평으로 들면 칼날이 무게로 인한 횡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면을 향해 휘어 버리기에 무기로써의 사용은 어불성설이다.

실제 유물 중에 영조척 쌍수도 정도의 크기를 가진 물건으로는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는 충무공 장검이 있는데, 충무공 장검은 애초에 분류부터 쌍수도가 아니며, 휘두르는 횡력을 견딜만한 두께를 지니고는 있으나 기록상의 쌍수도 무게의 세 배를 넘는, 5Kg에 가까운 무게 때문에 무기로써 쓸만한 물건이 못 된다.[4]

영조척 규격의 쌍수도 실물을 제작하여 시연한 경우에도, 날에 홈을 파 무게를 줄였음에도 4kg에 육박하여 2근 8냥을 아득히 넘어갔으며, 지나친 무게 때문에 정식 손잡이 부위만 잡고는 제대로 운용하기도 힘들어 결국 대부분의 동작에서 보조 손잡이에 불과한 호인을 그것도 칼날에 가장 가까운 끝 부분으로 최대한 벌려 쥐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주척 쌍수도의 타당성만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나마 현대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서 저 정도 두께와 무게로 제작이 가능했지, 전통적인 제법으로는 시연에 사용한 도검의 두께로 영조척 적용 쌍수도 길이로 만들면 휘두르기는 커녕 칼 자체의 무게를 못 견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도 힘들다.
조선시대나 당시 일본의 기술로 영조척 규격의 칼을 만들면, 사람이 휘두르기 힘든 무게가 되거나, 휘두를만한 무게라면 드는 순간 휘어지는 장식품이 되거나 둘 중 하나.

애초에 쌍수도의 기원이 된 노다치도 실용적인 형태의 경우 칼날의 길이가 약 90cm~1m전후로 주척을 적용한 쌍수도와 거의 일치한다.

쌍수도의 경우 국내 무예단체들이 별로 건드리지 않는 검술이기도 하다. 일단 칼의 규격자체가 너무 달라서 단가도 비싸고, 그런 칼을 운용하는 것에 대한 사전지식과 기량[5]이 없기 때문이다. 경당에서 예전에 130센티 길이의 칼을 제작한 적이 있다.

최근들어 수원의 무예24기 협회가 영조척에 맞춘 쌍수도를 제작해서 시범을 보이고 있으며, 각 대학의 24기 협회에서도 시연을 한다. 그러나 고질적인 사료부족으로 인해 각 대학별 24기 협회의 복원율이 조악한 관계로 실전성이나 섬세함 등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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