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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경계 극장판

Contents

  1. 소개
  2. 작중 행적
  3. 제8아라야식

1. 소개 ¶

荒耶 宗蓮 (あらや そうれん) 아얄라 총련

소설공의경계》의 등장인물로, 《공의 경계》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의 흑막

성우드라마CD애니메이션 모두 나카타조지. 나카타 조지가 타입문의 작품마다 출연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번역본의 영향으로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표기도 꽤나 널리 퍼져 있다.

키가 183cm인 건장한 체격의 남자로 항상 검은 코트를 걸치고 있으며, 뭔가 고뇌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오자키 토우코 의 말에 따르자면 지옥을 체현한 것 같은 남자.(이는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의 괴로움만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2. 작중 행적 ¶

미래복음을 제외하고 《공의 경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배후에 있지만 최종보스는 아니라는 기묘한 입장의 캐릭터. 짤막한 이야기인 《경계식》에서 아사가미 후지노, 후조키리에, 또 한남자와 접촉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이름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 후의 에피소드인 《모순나선》에서 대활약.

참고로 《통각잔류》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토우코가 시키에게 주는 출입허가증에 적당한 가명으로 아라야 소렌이라고 적었으며, 《가람의 동》에서는 시키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선생일을 하고 있었다고. 사실 공의경계 모든 챕터에서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1]

아오자키 토우코코르넬리우스 아르바와는 시계탑 시절부터 안면이 있었다. 평범하게 재능 있는 마술사였던 아르바는 다소 겉도는 입장이었지만, 토우코와는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 수학했으며, 나름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사이였다. 후에 혼에 대한 금기의 연구를 하다가 스승에게 파문당한다.

언젠가 스승이 아라야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에 대해 다른 제자들은 '욕심이 없는 남자'라고 비웃었으나, 아오자키 토우코만은 그것이 '자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무(無)의 세계'라는 뜻임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본래는 일본승려 출신. 전국시대 때 사람들간에 벌어진 참상을 보고 '인간을 구원할 방법'을 갈망하였으나, 이미 죽은 이들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기에 죽음의 수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고 자신이 '근원의 소용돌이'에 도달하여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행보를 걷게 된다.

그 결과 점점 인간이라기보단 일종의 '개념'에 가까운 존재로 변화한다. 여러 모로 사도27조왈라키아의밤과 비슷한, '인류를 위해 노력하다가 좌절해버린 연구자'에 해당하는 인물.

그러나 아라야 소렌의 '마술사'로서의 역량은 최악이어서, '근원의 소용돌이'와 이어진 육체를 지닌 료우기 시키를 제압해 뇌수를 바꾸는 것으로 근원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아사가미 후지노와 후조 키리에가 료우기와 맞붙게 조장한 것도 료우기가 죽음 = 허무라는 자신의 본질에 다가도록 촉진하기 위한 행위.

언급했다시피 마술사로써의 역량은 최악인지라 제대로 된 마술은 사용할 수 없지만, 다른 부분의 능력치가 출중하다. 신체 능력은 초전에 료우기 시키를 아이 다루듯 제압했을 정도이며(구체적으로는 콘크리트 벽을 부술 수 있고 권총의 탄환조차 발사된 이후에 피할 수 있다.), 결계를 다루는 능력에서는 마법의 영역이라 불리는 '공간차단'의 결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 거기에 '정지'의 기원을 가진 기원각성자이기도 해서 범위 안에 들어온 존재의 움직임을 정지시키는 3중의 결계를 자기 주위에 치고 다닌다.[2] 때문에 주된 전법은 결계에 닿아 정지된 대상을 엄청난 신체능력을 이용한 격투전으로 제압하는 것이다.그게 어떻게 격투전이냐.

원본에서는 총 6종의 결계가 나오지만, 애니판에서는 5개만 나왔다.

《모순나선》의 주요 전장이 되는 오가와 맨션도 억지력을 피하려는 목적하에 섬세하게 제작된 결계의 일종으로 이 맨션은 아라야의 신체 그 자체라서 어디든지 순간이동이 가능하며 맨션 내의 공간을 압착해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5]

구조는 여러 모로 거주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벽지 곳곳에 신경을 건드리는 묘한 무늬와 기묘할정도의 정적, 조명의 빛과 세기 등등 억지력을 속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술적인 조치가 없어도 그 배치만으로도 이미 결계의 영역에 다다른 상태.

아라야는 그 건물에 여러 가지 형태로 망가져 있는 가족들을 입주시켰고, 건물 구조 유도에 따라 입주민들은 전원 서로를 죽이게 되었다. 그리고 아라야는 계단을 반 회전시켜 건물의 방향을 바꾼 다음 한쪽에는 시신을, 다른 한쪽에는 끊임없이 마지막 하루를 반복하는 인형을 배치하여 '생(生)과 사(死)의 태극'을 완성했다. 이 때 주민들의 인형을 조종할 만큼은 살려줘야 했기에 아오자키 토우코를 죽이는 조건으로 아르바를 불러 협력을 구했다.

결국 에러를 일으켜 부모(의 인형)을 죽인 엔조토모에에게 '료우기 시키에게 접근하라'는 명령을 각인시켜 토모에와 함께 돌아온 료우기를 포획해 공간왜곡의 결계에 던져넣는 것에 성공. 료우기를 구하기 위해 맨션에 들어온 토우코가 아르바를 떡실신시키자 자신이 직접 나서서 토우코의 심장을 뽑고 머리만을 아르바에게 넘겨준다.

그럭저럭 성공의 직전까지 다가온 순간, 코쿠토미키야와 함께 난입한 엔조 토모에를 죽이느라 잠시 시간을 지체하게 되고, 그 사이에 아라야의 공간왜곡 결계를 찢고 나와 토모에가 가지고 왔던 일본도를 얻어 파워업한 료우기 시키(통칭 일본도 료우기)에게 공간압착도 씹히고, 칼부림 한 방에 3중의 결계 중 2개가 소멸하고, 오른팔까지 썰리면서 발리게 된다.

참고로 위 영상에서는 '「」으로서의 료우기 시키'가 대놓고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판만 본 사람은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료우기 시키!"라는 대사에서 아라야가 언급한 것이 '시키(式)'나 '시키(織)'가 아닌, '근원에 닿은 육신으로서의 시키'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이제까지 쭉 봐놓고서 갑자기 웬 뒷북이냐?'라는 의문이 나오는 경우도 있을 듯. 특히나 애니판에서는 시키의 육신이 원래부터 근원과 닿은것이 아닌, 직사의 마안을 통해 연결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이런 위화감이 더 크다.[6] 하지만 이 때 아라야를 향해 덤벼들기 전 시키가 지은 미소는 그간 본 적이 없던 시키가 아닌 다른 사람 같은 미소였다. 원작에서는 이 시점의 시키가 이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어투로 말하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수단으로 건물 외부로 순간이동한 후에 맨션을 압착시켜 료우기의 시신이라도 얻고자 했지만, 순간이동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자신이 있던 곳으로 정확하게 뛰어내린 료우기에게 사리를 박아놓았던 왼팔째로 절단당하는 치명타를 맞는다. 극장판에서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면서 "진짜로 맨션을 압착시키나" 그 전에 마찬가지로 뛰어내린 료우기가 "공중에서 죽음의 선을 찔러 버린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이후 토우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맞는다.[7] [8]
근데 퇴장 전에 I'll be back의 의미가 담긴 말을 남기기도 했다. 끈질긴 놈!

아무렇지도 않게 토우코에게 '60억 인류 전부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단언할 만큼 강인한 인물이었지만, 결국 그를 패배시킨 것은 엔조 토모에라는 인간의, 아라야 소렌의 입장에서 보면 하잘 것 없는 가족애였다. 또한 자신이 그토록이나 증오하던 '인류의 집단 무의식'과 발음이 같은 성을 가졌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 정작 본인은 그런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운명의 장난을 느낄수 있을정도.

3. 제8아라야식 ¶

참고로 아라야(阿羅耶)라는 단어는 실존하는 불교 용어 중 하나로, 제8아뢰야식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식(識)은 순서대로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말나(末那), 아라야(阿羅耶)인데, 이 중 맨 앞의 다섯 개는 말 그대로 오감을 말하고, 의식(意識)은 오감과 사고력 등을 포함한 작용을 말한다. 그리고 말나는 산스크리트어로 마나스(manas)라고 하는 건데 이건 자아의식을 말한다. 의식 아래에 있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의지 같은 것. 예를 들어 의식적으로는 자살하려고 해도 말나식은 자살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 아라야식인데 산스크리트어의 알라야(ālaya)를 음역한 말이다. 이 8식을 어떻게 보느냐는 종파에 따라 견해차가 있는데, 이 견해차에는 제9식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아마라식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가 함께한다. 아마라식을 두고서 현장(玄奘)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청정한 부분으로 간주하지만 진제(眞諦)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제9식으로 상정하는 것.

전자의 시각에서 아라야라는 것은 모든 만물의 행동(karma)이 훈습되어 저장되어 있는 집합적 무의식이다. 이 시각에서 아마라식은 번뇌에 오염된 상태의 아뢰야식이 청정한 무루지인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변형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반면 후자의 시각에서는 제8아뢰야식과는 별도로 제9식인 아마라식(무구식)이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 아뢰야식은 인류의 총의고 우주만물의 총의인 아마라식은 한 단계 더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타입문의 세계관은 분명하게 후자에 바탕한다. 아라야 소렌이 아라야식의 억지력을 피해서 근원의 소용돌이에 닿으려 애쓰는데, 여기서 인류의 억지력(아라야식)은 제8식이고, '만물의 시작과 종언, 세계의 모든 것을 기록하며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근원의 소용돌이는 제9식이라 봐야하는 것. 『료우기 시키』의 게임에서의 기술명이 '무구식・공의 경계'인 점이나 시키를 본 아쳐가 말하길 '아마라의 체현'이라고 했으니 빼도박도 못한다. 소우렌이 시키의 몸에 자신의 를 이식하려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아뢰야식과 집합적 무의식, 무구식과 아카식 레코드를 같이 두고 말할 수 있는지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는데, 검색만 조금 해보아도 '유식의 아뢰야식 이론과 융의 무의식 비교 연구' 같은 제목의 연구 논문이 셀 수 없이 튀어나온다. 결론적으로 말해, 워낙 이 문제로 갑론을박이 있기에 다수의 지지를 받는 똑부러지는 답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융을 비롯한 사람들이 서구에서 불교와 심리학을 접목시켜 연구하려 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아넨엘베의 하루에서 네코 아르크 카오스에게 불린 호칭이 "소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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