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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
東京都足立区女子高生監禁リンチ殺人事件

Contents

  1. 개요
  2. 사건의 발단
  3. 사건의 전개
  4. 피해자가 당한 일들
  5. 사건의 결말
  6. 환경적 요인
  7. 피의자에 대하여

7.1. 범인의 인적 사항

  1. 관련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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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1988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월 4일까지 약 40일에 걸쳐 일본에서 15~18세 되는 소년들이라 읽고 인간 탈을 쓴 추악한 짐승들이라고 불러도 시원치 않을 천하의개쌍놈이 원한도 없고 만난 적도 없었던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감금하며 여러 명이서 온갖 고문성폭행으로 학대하고 끝내는 살해한 뒤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 은폐하고 나서 평상시와 똑같이 일상을 보낸 엽기적인 성범죄 결합 집단 살인 사건.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

하지만 20여 년 후, 한국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는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암매장 사건이 발생하고, 거기서 약 25년 후에 한국에서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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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의 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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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1971년 1월18일 ~ 1989년 1월5일)의 사진.

1988년 11월 25일, 소년 A는 자전거로 아르바이트에서 귀가 중이었던 소녀를 발견한다. 소년 A가 공범이었던 소년 C에게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하였다. 공격을 받은 소녀는 도로 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 C는 소녀를 발로 찬 뒤 도주했고, 소년 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 주겠다. 나도 아까 그 녀석에게 칼로 위협당했다." 며 말을 걸어 소녀를 데려다주게 된다.

하지만 소녀의 집에서 10분쯤 남은 어두운 창고 앞에서 난 야쿠자의 간부다. 야쿠자가 너를 사고로 위장해 차로 치어 죽이기로 되어 있다. 얼마 뒤 차도 이리로 오겠지만 한 번 하게 해 주면 용서해준다며 소녀를 호텔로 데려가 강간했다. 그 후 '원래는 야쿠자가 너를 죽이기로 되어 있었지만 넌 내 여자친구와 닮았으니 살려주고 싶다. 너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윗선과 잘 얘기해 볼테니 그 때까지는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며 소년 C의 2층집으로 끌고가 수 시간 동안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할 거라고 위협하여 탈주를 저지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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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건의 전개 ¶

11월 30일, 소녀를 집에 보내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혹시 소녀의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된 소년 A. 소년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부모에게 '가출했으니 찾지 마. 친구의 집에 있으니 실종신고는 취소해 줘'라고 먼 지역의 공중전화로 5일에 걸쳐 3회씩 전화하게 하며, '경찰서도 멀리 있고, 근처에도 야쿠자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고 협박했다.

소년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분명히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소년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에서 소녀를 데리고 들어와, 모친은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소년 C의 부친도 소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하는 등 소년 C의 부모님도 그 당시에는 소녀가 집에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소년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가 학대당하던 바로 옆방에는 C의 형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는 모른 척했다. 그 형에 그 동생.

한 번은 소년 C의 모친이 소녀가 계속 집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피해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댁에 이런 이름의 딸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고, 피해자의 모친은 '지금은 없습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소년 C의 모친은 주저하다가 가짜 이름을 대고 바로 끊어버려, 피해자의 부모는 가짜 이름을 토대로 수사를 벌여야 했기에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소년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전을 보거나 같이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등 불량한 소년 C의 친구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소녀는 소년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소년 C와 소년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소녀는 소년 C의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 올라 2층의 소년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 뒤 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소녀는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살려 줘'라고 했지만 감금 말기에는 "죽여 줘"라고 말할 지경까지 되었다. 또한 가해자 소년들이 폭행할 때 틀어 놓은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声援)'이라는 노래의 가사인 '힘내, 힘내'를 때때로 혼잣말하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감금 초반에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켜 먹이거나 소년 C가 소녀의 칫솔 등을 사 주거나 하는 등 나름배려를 해주었으나 감금이 지속될수록 소녀의 상처나 화상이 심해짐에 따라 식사, 목욕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계란 등 집에 있던 것을 소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 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초, 소년 A등 4명이 낮잠을 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곧 소년 A가 눈치챈다. 그 뒤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소년 C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소년 A는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 뒤로 그 소녀에게 가했던 것들은 실로 귀신과 짐승도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풀려나면 경찰에 신고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 자살로 위장해 죽이자느니, 분쇄기에 넣자느니, 콘크리트에 넣어 바다에 던지자느니 하는 대화를 웃음 섞어가며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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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해자가 당한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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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건의 결말 ¶

1989년 1월 4일, 소년 A는 마작 내기에 크게 실패해 10만엔을 잃은 후 소년 D의 집에 가서 일행과 합류한다. 피해자의 상태가 아주 심각해짐에 따라 이미 피해자를 처리하기 귀찮은 물건 정도로만 여기게 되어 C의 집에 가지 않고 방치해 둔 소년들이었지만, A는 마작에서 진 분이 풀리지 않고 10시에 개장하는 사우나에 가기 전, '마작에서 진 것도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 녀석을 괴롭히러 가자.' 고 제안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무려 2시간에 걸쳐 소녀를 폭행한다.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예감했지만, (그녀에게) '꾀병이다' 라고 말하며 폭행을 계속하고, 사우나에 간 후 다음 날 한 소년에게 '피해자의 상태가 이상하다' 는 연락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C의 자택에 가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즐거워서 웃은 게 아니다' 라고 하지만…….딱봐도 즐거워서 웃는거잖아

소년 A는 (죽은) 소녀를 이불로 싼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껌 테이프로 말아 근처의 공장에서 훔친 드럼통에 넣고 차에 실은 뒤 일하던 타일 공장에서 조달해 온 콘크리트를 흘려넣고 벽돌 등으로 고정했다. 굳이 콘크리트를 넣은 까닭은 공구리 괴담을 사실로 믿어서인 듯. 다큐에 따르면 만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도 한다. 이 때 백주대낮에 당당히 피해자를 콘크리트에 매장한 장소는 놀랍게도 소년 A의 집 앞 주차장이었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드럼통을 빌린 차에 실어 옮겼다고 한다.

드럼통을 숨기기 위해 이를 검은 쓰레기 봉투에 넣은 뒤 껌 테이프로 밀봉했다. 그 뒤 소년 A가 빌려온 왜건을 운전해 드럼통을 바다에 버리려 했지만 무서워져 도쿄의 매립지에서 도로 틈의 풀숲에 버렸다. (바다에 버렸다면 영영 미제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A는 드라마 '톤보'의 마지막 회 비디오를 찾았다. 피해자가 납치된 날, 그녀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에서 빨리 귀가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대해서 피해자가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같이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비디오를 꽃다발과 함께 넣으려고 했지만,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는 소년 B의 만류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소년 A는 "피해자가 불쌍하다기 보다는 저주받기 싫어서…"라고 말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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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이 시체를 유기한 장소 사진.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밝혀진 것은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이다.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있었던 강간 및 절도등의 혐의로 잡힌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 형사가 한 무심코 한 "너 사람을 죽이면 안 되잖아?"라는 질문에 공범인 3명이 이미 사건에 대해 자백했다고 착각하여 모든 사건 내용을 사실대로 고하였다. 한놈이 멍청한 게 다행이지…. 만약, 담당 형사의 말실수가 없었더라면…….

담당형사는 소년이 자백한 내용을 반신반의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도쿄 코토쿠와카스 15호지 해변 공원 정비 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시체를 담고 있었던 드럼통 한 개만 있었으며, 드럼통를 싼 콘크리트 틈새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이를 즉시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 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하였다. 드럼통의 안에는 보스턴백에 담겨진 두장의 이불에 싸여진 여자의 시체가 들어있었으며, 소녀의 죽음이 이미 2개월 이상 경과한 뒤라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고, 따라서 시신의 상태는 매우 나빴다.

소녀의 피하 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 정도로 극도의 영양 실조 상태였었고 원래 51kg이었던 소녀의 체중은 36kg으로 줄어있었다. 또한 피해자의 위에서는 바퀴벌레다량의 정액, 그리고 소변 등이 발견되었다. 위(胃)에서 발견된 것 맞다.
손발은 묶인 채였고 안면은 눈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며, 하반신은 안면보다 더한 상태였다고 한다. 얼굴의 일부 뼈는 으스러져 있었고, 가슴에 수많은 바늘이 박혀 있었으며, 하반신도 심하게 손상되어 있는 상태였고, 무엇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머리카락이 다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새끼손가락의 손톱이 벗겨져 있었고, 왼쪽 유두는 펜치 같은 공구로 집혀 손상되었으며, 제대로 붙어 있는 치아는 하나도 없었고, 또한 축소되고 약간 녹아 있는 상태였다. 고막 역시 심하게 손상되어 최후에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사인은 구타에 의한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 소녀는 사망하던 당일, 2시간에 걸친 폭력이 끝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괴로워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이런개씨발새끼들 똑같이해줘야되

시신의 상태는 이미 안면이 심하게 함몰변형되어 있었고 부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으로 사인을 비롯한 인명 확인은 절대 불가능했던 상태였다. 그러나 남아 있던 지문과 치열을 조합해본 결과,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 후 귀가 도중에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던,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에 살던 타카스 1 번지의 현립 야시오 고교 3학년이었던 후루타 준코(古田 順子, 17)인 것이 확인되었다.

소녀가 야시오 시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뒤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던 부모는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결말은…….

사건 후 관련인들의 진술에서 소년 C의 부모는 여학생이 2층에 있는 것을 내내 알고 있었지만, 소년 C가 두려워 이를 묵살하였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였다. 자랑이다, 아주. 사건이 발각되기 직전, 소년 C의 방과 베란다는 바닥과 커튼 등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방을 (아무것도 모른?) 모친이 깨끗하게 청소했기 때문에 증거확보를 위해서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는 이미 방 안의 증거들은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깨끗하게 청소까지 해준 소년 C의 대인배 어머니, 쯧쯧…. 대인배가 아니라 공범인데?

소년 A의 부모는 이러한 범행의 진상이 밝혀지자, 충격을 받고 가산을 정리하여 5,000만 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건넸으나, 피해자의 부모는 이를 거부했다. 사건의 내용을 접한 피해자의 모친은 충격을 받고 쓰러져 장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충격적인 점은 소년 B의 생모가 아들의 인생의 망가진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의 묘를 때려 부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아들에 그 애미다.

초반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일부 찌라시들은 소녀의 얼굴이나 수영복 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며 행실이 불량한 아이였으며, 소년 그룹의 동료 중 하나였다는 등 불분명한 사실을 그대로 기사로 내놓았고, 이는 언론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이다. 이런 일부 언론 때문에 창궐한 악영향으로 인하여 일본에는 아직도 피해자를 불량 소녀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그녀의 억울함을 알겠습니까?라는 책에서는 __피해자는 언론에게 다시 한 번 살해당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극성만을 노린 찌라시들의 보도와는 달리 피해자의 주변인들과 동급생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우수한 성적에 결석도 1년에 두세 번 정도였으며, 불량학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하는 밝고 명랑한 성격에 미인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친구에 따르면 아이돌동경했다고 하며, 졸업 후 곧바로 근처의 백화점에 취직도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극성만을 노린 일부 매스컴의 보도로 인해 근거 없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발발하자 피해자의 부친은 피해자의 실명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하였으며, 이후 피해자의 가족은 남의 눈을 피하며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무 죄 없이. 또한 피해자가 살해된 1월 5일의 얼마 후인 1월 18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18살의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다고…….

케이크 만들기가 취미였던 피해자는, 얼마 후인 크리스마스에 어머니와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가 잘 설명해주듯, 그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였으며 졸업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는 범행을 당하기 전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부터 교제를 전제로 한 스토킹을 집요하게 당하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이 남자가 소년들 일행에게 정보를 주고 그녀를 협박했고, 소년들은 계획적 범행인 것이 탄로날 수 있음이 두려워 이 사실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범행에 계획성이 있었다고 보일 경우, 형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은 소녀의 스토커가 사실은 소년 그룹과 아는 사이였고 정보를 들은 소년들은 흥미를 느껴 그녀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으며, 이에 주범은 소녀의 스토커가 야쿠자의 두목이라는 거짓말로 그녀를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이 설에 대한 근거로 소년들이 평소 강간에 쓰던 차를 사용하지 않아 소녀를 협박할 자신이 있어 보였다는 점, 그들이 평소 활동하던 아야세에서 5km나 떨어진 미사토 시까지 일부러 온 것이 석연치 않다는 점, 소녀의 집 근처가 인적이 드문 창고 앞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점 등이 언급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4년 뒤에 일어난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은 이 사건의 범인들이 징역형을 받은 것을 근거로 자신들의 범행은 별거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치카와 사건은 다수의 사람이 살해됐고 범행 당시 범법자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이미 벗어난 점이 고려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실 우연한 계기[1]로 인하여 범인들이 자백을 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진실을 뒷받침하기 위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들의 주변인은 모두 피해자를 목격하거나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했고, 심지어 폭행과 강간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경찰에 신고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또한 이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의 한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흉악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 증거도 없이 묻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이라도 용기 있게 대처했으면 피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논픽션 라이터 후지이 세이지가 사건의 주범들과 공범 그리고 목격자들을 직접 만나 탐문한 것을 바탕으로 엮은 책 '소년의 거리(개정판: 17세의 살인자)'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자아이를 납치한 것은 알았지만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신고하겠지.' '소년들의 보복이 두려웠다.' '집에 돌려보냈다는 말이 미심쩍었지만 범인과는 친구였기 때문에 믿었다.' 라고 말다. 주범들의 명령에 따라 피해자를 강간하고 폭행한 소년들 중 일부도 자신의 죄가 밝혀질 게 두려워 신고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두려워 친구를 범행에 끌어들인 소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후지이 세이지는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주범들이지만, 직접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무관심과 약한 마음 역시 확실하게 피해자의 살해에 가담했다.' 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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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환경적 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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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external image]](http://3.bp.blogspot.com/-Of88nXC1XoU/T2HLx5F1xtI/AAAAA AAADqM/Ce4zSUu93RA/s1600/hanahatadanchi4.jpg)

1990년경 아다치 구에 방치된 아파트 단지 모습.

2015년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진 동네는 지형이 달라졌고 깔끔한 주택가가 됐지만 그 당시에는 좁고 어두운 골목에 막장치안으로 유명했다. 해만 지면 불량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 다니며 싸움질을 하거나 거리 기물을 파손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주민들은 무서워서 이들을 못 본척하며 다녔고 비명소리가 들리든 말든 매일 듣는 소리라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피해자가 납치당하면서 비명을 질렀어도 인근주민들에게는 그냥 매일 들리는 소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주민들은 순찰 경관 좀 늘려달라, 분서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을 아야세 경찰서에 넣었지만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씹혔다. 이런 동네에서 살아가려면 불량청소년 그룹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으니 위에 방관했다는 이유로 비판 당한 청소년들은 좀 억울한 감이 있다. 기가 막히는 건 본 사건이 터진 뒤 그렇게 해달라던 순찰경관 증가, 보안등 설치가 일시에 이루어졌다.(...) 첨언하자면 지금 이 동네에서 이 사건을 주민들 앞에서 언급하면 엄청나게 짜증낸다. 그 당시 여기 살던 사람들은 재개발로 거의 이사 갔고 우린 훨씬 뒤에 이사왔는데 타지 사람들이 자꾸 그런 사건을 우리한테 묻는다는 게 짜증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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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피의자에 대하여 ¶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최악의 말짜,개악질 쓰레기들. 인류의 퇴화.평생 지옥에서 도륙당해야 할것들.아니, 지옥에서 안받아줄지도 모른다. 히틀러, 김정일만도 못한 것들. 이 지구상 아니 우주상에 있는욕을 몽땅 쏟아붓는다 해도 모자르다.
주범인 소년 A는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흉악함 때문에 1심에서 17년, 2심에서 20년형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각각 5~10년, 5~9년, 5~7년을 선고했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들 이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은 직접 가담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대부분 약식 기소되어 가볍게 처벌받는 것으로 끝났다. 이런 짓을 하고도 겨우 요거밖에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면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가 나중에 깊이 반성하고 옥중에서 작가로 데뷔하여 자신의 인세를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넘기고 사형집행을 당한 [나가야마 노리오](/wi ki/%EB%82%98%EA%B0%80%EC%95%BC%EB%A7%88%20%EB%85%B8%EB%A6%AC%EC%98%A4)가 정말 억울한 것이 된다.

사형은 이런 짓을 저지른 자들에게 집행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법정에서도 그들은 피해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발언하였고, 소년 A는 반성조차 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소년 A가 눈물을 흘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바보같이 잡혀 버린 내 자신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한다. 천하의 개쌍놈들. 불로 태우기도 아깝다.

피해자의 부모는 피고인 측의 면회 신청 및 성묘를 절대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재판의 증언 당시 피고인에 대한 원 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하였다.[2]

현재 소년 A를 포함한 4명은 출소하였지만 대부분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한다.잘됐다 이 중 한 명은 또 다시 폭행 사건을 저지르고 교도소로 들어갔다.

공범 중 한 명은 나중에 참회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참회할 거였으면 그런 짓에 참여하지 않는 게 옳지 않았을까?[3]

참고로 이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 가족들은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 이사를 갈 때마다 해당 지역에 정체가 밝혀져 버려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으며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인과응보. 그리고 사건 명칭으로 검색하면 범죄를 저지른 4인방의 인적 사항(본명 + 출소 후 개명한 이름, 사진 등)을 [해당 페이지](http://personalsite.liuhui- inter.net/aoiryuyu/josikouseikankin.htm)에서 확인 가능하다.[4] 2ch에서 꾸준히 해당 사건의 스레드가 작성/유지되는 걸 보면 이런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듯. 까놓고 말해서 보복이 허용되거나 제대로 제재받지 않는 사회였으면 우발적인 살인도 아니고 계획살인에 그 죄질이 극히 흉악하여 누가 봐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게 분명한 만큼, 피해자 가족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이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맞아 죽거나 그게 아니라도 아예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죽은 사람처럼 드러나지 않게 살아야 했을 것이다.

굳이 인터넷으로 검색할 필요없이 방송에서 잊을만 하면 그때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본인들이라면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으며, 피의자들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다. 아무리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가족들과 피의자의 사진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지라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동네에서 어느 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그 범인과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본사회 특성상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알아버린다. 용의자들은 일본을 떠나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지속적인 경계 및 멸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봤자 누가 알아차려서 인터넷이 쫙 뿌리겠지. 문제는 아무 죄 없이 가족들까지도 같은 처지……아무 죄가 없기는 무슨; 위에서 소년B의 엄마가 피해자가 자신의 아들의 인생을 맞쳤다며 피해자의 묘를 부순걸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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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범인의 인적 사항 ¶

주요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5]

공범으로는 남성 17명, 여성 1명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실제 살인과 학대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아 처벌이 가벼웠다.

공범 중 망보기 역할이었던 소년의 인터뷰에 따르면 '탈출시킬 찬스도 있었고,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무서워서 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A 일행은 '사람을 샌드백처럼 장소 가리지 않고 어떻게 저 정도로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렸고, 피해자는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소녀가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묻자, 공범 소년은 그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명령받아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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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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