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관 ¶

1543년~1599년
왕실 종친 출신으로 효령대군의 6대손이다. 1576년 무과에 장원 급제해 선전관, 호조좌랑 직 등을 거쳐서 1587년에는 경흥부사에 임명되었다. 이 때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해 백성 160여명이 끌려가자 당시 조산만호였던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 토벌에 나서 절반 이상의 백성들을 구출했으나 이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이경록의 상관인 북병사 이일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피해의 책임을 이순신과 이경록에게 돌렸으나 조정에선 이순신의 변론을 인정해 두 사람에게 백의종군이란 처벌만 내렸다. 이후 다시 여진족이 침범했을 때 화살을 맞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이를 격퇴한 공을 인정받아서 1589년 김해부사로 직책을 옮겼다. 이후 1592년 나주 목사를 거쳐 1593년에는 제주 목사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기간 동안 이경록은 제주도를 관리하며 본토에 식량과 가축 등 전쟁 물자를 지원하였다.[1] 제주도의 병력을 선발해 본토에 증원할 뜻을 밝히기도 했으나 당시 조정에선 제주도의 방위 또한 중요하다며 거부하였다. 제주도의 성곽들을 개축하는 일을 지휘하던 도중 병에 걸려 1599년 1월 사망했다.

야구 선수 ¶

경찰 야구단 No.

이경록(李炅録)

생년월일

1989년 1월 18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서림초-동산중-동산고-동강대-대불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1년 삼성 라이온즈 9라운드 68순위 지명

소속팀

삼성라이온즈(2011)
KIA 타이거즈(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7번(2011)

야마모토 요스케(2006~2007)

이경록(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61번(2012~2014)

박종모(2010~2011)

이경록(2012~2014)

KIA 타이거즈 소속의 외야수.

2011 신인지명 때 9라운드에 삼성에 지명되었다. 거의 끝에 지명되다시피 해 팬들도 거의 기대를 안 했지만 2011 시즌 2군 첫 경기부터 주전으로 출장하며 6번이나 7번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 6월 2일 LG와 2군 경기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2군 경기 통산 17번째 사이클링 히트.

2011 시즌에 홈런 8개를 기록하며 다수의 홈런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2루타를 23개 치며 남부리그 공동 2위를 했다. 또한 큰 체구답지 않게 발도 빨라 3루타도 4개나 쳤고, 도루도 12개를 기록했다.

기대만큼 장타율을 향상시키고 다소 아쉬운 선구안 부분을 개선한다면 차후 1군에 올라올 법하다.

2011년 11월 22일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로 기아로 이적했다. 이후 2군 물갈이로 인해 선수단이 많이 뒤집힌 2013 시즌부터는 2군의 4번타자로 한대화 총괄코치가 점찍은 상태. 선구안이 아쉽지만 4번타자 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량을 올리게 된다.

2014 시즌엔 재활에 들어가야 했으며, 시즌 이후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야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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