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1. 전 야구선수

1.1. 두산 베어스 시절

1.2. 한화 이글스 시절

1.2.1. 2010 시즌

1.2.2. 2011 시즌

1.2.3. 2012 시즌

1.3. 은퇴 후

1.4. 기타 사항

  1. 庭園石

1. 전 야구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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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external image]](http://img.sportsseoul.com/article/home/2010/03/23/1003 23_4ba831218363c.jpg)

정현석이 아니다!

이름

정원석(鄭原錫)

생년월일

1977년 3월 2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역삼초 - 휘문중 - 휘문고 - 동국대

포지션

내야수, 외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OB베어스 2차 2순위 지명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0~2009)
한화 이글스 (2010~2012)

한화 이글스 등번호 8번

윤재국(2008~2009)

정원석(2010~2012)

오재필(2013)

두산 베어스, 한화이글스 소속의 야구선수.

1.1. 두산 베어스 시절 ¶

1996년 OB 베어스의 2차 2순위(전체 17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동국대학교로 입학했다. 3학년 때 한대화 감독을 만났으니 나름대로 10년 후를 내다본 선견지명이다. 물론 그럴 줄 알 리는 없었겠지만…. 졸업 후 두산베어스에 입단하여 쭉 백업선수로 출장하다 2009년에 단 한 경기도 1군에서 뛰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당한다.

두산 베어스 시절에 대해 냉정히 평가하자면 별 볼일 없었다. 1군감도 아닌데 하도 기용되어서 돌경문의 남자 소리 들었을 정도….

1.2. 한화 이글스 시절 ¶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된 후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한화 이글스에 이적했다. 대학교 스승인 한대화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이글스로 입단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한대화가 먼저 부른 것이 아니라 정원석이 자진해서 입단테스트를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한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 전에는 KIA에서 먼저 입단테스트를 받았다고.

1.2.1. 2010 시즌 ¶

시즌 초반에는 5할 5푼 6리라는 타율로 정기계 등의 별명을 얻으며 칭송받았었다.

그.러.나.

득점권의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폭풍 삼진이거나 땅볼, 플라이 등을 치는 등 득점권에서는 전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반면, 주자가 없을 땐 귀신같이 안타를 쳤다. 타 팀 팬들은 팀에서 유일하게 3할대 언저리 타율을 유지하는 그가 왜 까이는지 몰랐을 정도.

팬들은 정원석을 보고 주자살인마(킬러), 득점권의 프레디, 정득병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정원석이 주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타를 쳤을 땐 팬들끼리 엄청나게 난리가 날 정도.(…) 거기다가 수비도 문제. 결정적일 때마다 수비실책을 하며 팀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내야 플라이를 놓쳐서 팀이 역전당하질 않나, 송구에러 때문에 팀이 패배를 하질 않나…;;

사실 잦은 수비실책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두산 시절 백업은 주로 1루수/3루수 백업만 봐왔는데 한화에 와서 갑자기 2루 수비를 하려니 이게 잘 되겠는가…. 그래도 두산 시절에 2루 백업으로 나오기는 했다. 1/3루에 비해 빈도가 많지 않을 뿐이지.

프로 레벨에서 2루수를 보려면 정근우, 안치홍같이 체격이 작아도 민첩하고 상황대처가 빠르거나 고영민, 조성환같이 열심히 뛰는 타입의 선수여야 한다. 그러나 정원석은 상대적으로 2루 경험도 적고 2루수 보기에 체형도 적합치 않고 발도 빠르지 않으면서 수비 좌우폭이 극단적으로 좁고 알도 잘 깐다.

그럼에도 계속 기용이 되어서 팬들끼리는 동국대 라인, 한대화 양아들 등으로 불렸다.

정원석 본인도 이런 비판에 대한 자각을 하고 있어서 이후 절치부심해서 득점권 타석에서의 지독한 부진은 털어버리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 5할에 육박하는 타격을 하면서 팀내 타율 1위로 자리잡았다.

후반기 들어 몇 경기 홈런도 치고 득점권 타율도 오르는 등, 잉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전반기에서 보여준 포스(?)가 워낙 강한데다, 뇌수비나 뇌주루는 달라진 게 없다. 사실 팀이 개꼴칰 한화니까 주전 2루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지, 만약 타격 되고 수비 되는 다른 2루수가 있는 팀이라면 백업이었을지도.

7월 20일 롯데전은 정원석의 날이라 부를 정도로 대활약을 했다. 롯데 에이스 라이언사도스키에게 내내 끌려가던 타선을[2] 김태완과 함께 이끌며 팀에게 승리를 안겼다. 2루타 2개, 3루타 1개를 때려냈으며 3루타는 9회말 3:2로 뒤지고 있던 주자 1루 상황에서 터진 동점 적시타였고 그 후 전현태의 묘한 타구의 내야안타가 나오자 홈으로 쇄도, 결승 득점까지 올렸다. 4타수 3안타 1타점으로 수훈선수가 되어 인터뷰까지!

3루타 후 바로 홈 쇄도를 한 상황이라 숨이 차 정신없는 상태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9회 상황을 설명하는 도중 "홈에서 쇼부하는 거 같아서…."[3]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쇼부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 별명은 꽤나 흥해서 그 후 팬들은 정원석의 플레이를 말하는 데 '쇼부'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4]

이후 다시 타율이 하락했지만 2010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국 3할 등극에 성공하여, 2010 시즌 한화이글스 유일의 3할 타자가 되었다. 팬들도 까다 보니 미운 정이 붙어서(…) 방출생들 중에서 가장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으나 방출생 효과로 1년 반짝하고 내년부터 꼴아박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방출생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방출생이라는 사실은 둘째치더라도 우려할 만한 것은 그가 2011 시즌에는 대한민국 나이 35세의 노땅이라는 것. 풀 시즌을 35살 때 처음 치른 선수가 이 성적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성적이 한화이글스에서는 톱클래스의 타자 기록이기 때문에 더더욱 우려가 된다. 그러니까 투자 좀 하라고….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00 출루율 0.389 106안타 7홈런 43타점이다. 정규타석을 채운 3할타자가 테이블세터도 아닌데 43타점이라는게 심각한지 모르겠지만, 이는 팀내 3위 기록이며 정원석의 득점권 타율은 .278로 타율에 비해 낮지만 그렇다고 막장까진 아니다. 즉 팀이 안습이어서 그렇단 이야기. 좌투수가 나올때 1번, 2번을 치기도 했으나, 주로 5~7번까지가 정원석이 주로 기용된 타순이다. 안타, 홈런 모두 두산에서 7년동안 친 것보다 1년간 한화에서 친 것이 더 많다. 타점도 마찬가지.

1.2.2. 2011 시즌 ¶

3루수를 맡을 사람이 없고, 이범호 재영입에도 실패해서 2루수에서 다시 3루수로 전환했다. 그러나 4월 3일 롯데전에서 어깨 부상의 여파로 악송구와 파올플라이볼 처리 실패라는 에러 2개를 혼자 기록, 경기 도중에 도로 2루수로 돌아가 무난하게 플레이. 이후 지명타자로 주로 나오고, 잉여스러움은 별반 다를게 없다. 한대화는 팀에 마땅한 고참과 팀 리더가 없기에 정원석한테 계속 기회를 주려 하나, 분위기만 더 망쳤다. 그 와중에도 타격은 귀신같이 3할을 치는 바람에 욕하기도 애매모호하다. 이후 김강이 2군으로 내려가며 텅 빈 1루로 보직을 옮겼으나 수비실력은 여전해서 호수비가 가끔씩 나올 때마다 따로 플짤로 만들 정도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각성했는지 수비 실책도 점점 줄어가고 무엇보다 더 이상 주자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편 주자만 죽인다! 12게임 연속 안타 달성과 함께 장성호가 복귀하면서 살아난 최진행과 드디어 정상적으로 느껴지기는 하는 클린업트리오를 완성했다고 한화팬들은 설렜으나, 4월 26일, 27일 연속으로 무득점 행진을 보여주였으며 정원석또한 이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5월 들어서 팀이 상승세에 올라가자 본인도 같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 타율이 2할 8푼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득점권에서 더 이상 정득병이 아니게 되었으며 꾸준한 출루와 적절한 적시타로 자기역할을 해주고 있다. 5월 27일 다시 3할 타율로 복귀. 1루수로 보직을 옮긴 뒤에 갖은 호수비를 보여준다. 전처럼 삽질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가 없어서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 거기다 필요할 때 딱딱 안타를 쳐주고 있어서 한화팬들에게 야구 볼맛을 나게하고 있는 선수 중 한 명! 이미 정득병이라는 별명은 아득히 멀어져버렸다. 6월 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득점권 타율 1위. 0.405를 기록하고 있다. 저..정득신

6월 8일 LG 트윈스전, 5:6으로 한 점 뒤진 상황에서 3루에서 홈으로 쇄도하는 대담한 홈스틸을 시도했으나 성공심판들의 해태눈깔 오심으로 그대로 아웃당하며 경기가 종료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baseballab&no=29bcc427b78177a 16fb3dab004c86b6f5737608fe2aa730c48232f9a4f611e78486227dd44aee949037aacfc43631 4cb451776b3955ea7986289e555d81554ed44044a85ec4462ee&fno=7cee8071b08668f73cee9 8bf06d6)

사진에서 보이듯 홈베이스를 밟을 때 조인성의 미트는 보이지도 않는다. 명백한 세이프 상황을 아웃으로 처리하는 귀신같은 심판진...

하지만 이미 홈스틸 이전에 임찬규가 보크를 저지른 상황이었다. 허나 주심을 포함, 4심이 모두 임찬규의 보크 동작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고, 4심합의의 보크판정은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웃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 날 경기는 LG의 승리로 돌아갔다.

경기 이후 심판진은 오심을 인정했고, 구단차원의 항의가 있다면 징계를 받겠다고 했다. 결국 심판진은 9게임 출전금지의 징계를 받았다.

6월 들어서 잔부상 때문인지 체력저하인지 극심한 타격 슬럼프를 겪었다. 4월 타율 0.314, 5월 타율 0.293이었던 그가 6월 돼서 0.161, 7월엔 0.160. 결국 선발라인업에서 차차 빠지고 후반에 대타나 대수비로 기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서면 시원하게 선풍기질을 하고 대수비로 나오면 어이없는 송구 에러로 안좋은 모습을 보이자 결국 7월 17일 한대화 감독은 문책성 2군행을 통보하였다. 2군 경기에 꾸준히 출장하고 있지만, 2군에서도 그리 좋지 못한 성적(0.133)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가 5월의 타격 밸런스를 되찾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2군에서 절치부심하고 올라올 것으로 기대됐으나 8월 중순, 2군 경기 중 불규칙 바운드 된 공에 맞아 안와골절로 수술대행. 그대로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1.2.3. 2012 시즌 ¶

2011시즌 후 전지훈련에서 외야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2012 시즌 시범경기에서 좋은 타격감을 보여줘 2012시즌엔 주로 대타나 백업요원으로 중요하게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됐지만...

4월 1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對 SK와이번스전에서 대타로 출장해 우익수 수비를 들어가서 안치용의 뜬공 타구를 쫒아가다가 펜스에 크게 충돌해 바로 병원으로 후송됐고(이 타구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 되었습니다.), 오른손 중수골 2개 탈골 진단을 받아 결국 수술을 받았다. 재활까지 2~3개월이 소요될것으로 알려져 전반기 출장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이 경기는 정원석의 1군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렸다.

나이도 적지 않은 선수인데, 중요하게 쓰일만 하면 계속 부상이 발목을 사로잡고 있다. 안타깝다.지못미

결국 위 부상으로 인해 2012 잔여 시즌에 더이상 출장하지 못하였고, 2012년 시즌이 종료된 현재 소식 한줄없이 완전 공기가 된 상태...

2012년 10월 19일 신주영과 함께 방출되었다. 계속되는 부상과 재활로 발목을 잡혔고, 적지 않은 나이 또한 방출 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 구단들은 KBO의 지시에 따라 NC의 20인 외 지명이 있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방출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약 한 달 동안은 무적(無籍)선수 신분으로 있게 된다. 보류선수명단 공시일인 11월 30일에 정식으로 공시.

1.3. 은퇴 후 ¶

인터뷰를 통해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재활도 거의 끝났으며,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 =read&officeid=109&articleid=0002429809)

그러나 스포츠서울 김경윤 기자의 트위터에 의해서 대전에 호프집을 창업했다는게 알려졌다.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은 듯. 번창하길 바래요

12월 13일날 올라온 김경윤 기자의 트위터.
스포츠서울 김경윤 ‏@bicycleyoun
정원석 전 선수가 대전 둔산동 1105번지 지하 puzzle 맥주창고식프리바를 개업했습니다.
많이들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맥주 바는 개업 이후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고 하고, 또 야구용품점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시즌 초 한화의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경기력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http://gall.dcinside.com/li st.php?id=hanwhaeagles&no=3796179&page=1&recommend=1&recommend=1&bbs=). 아이고 한화야

1.4. 기타 사항 ¶

응원가는 허경환의 있는데를 개사한 곡. 가사는

"한화에 정원석이 있는데~있는데~ 한화에 있는데~ 한화의 승리위해 날려라~ 한화에 정원석이 있는데~ 한화에 있는데~ 한화의 승리위해 날려라!"

따라부르기가 좋고 흥겨워서 깔때 응원가만 좋다고 까인다.(…)

게다가 2012년 10월 19일자로 한화에 정원석이 없게 되었다.

2. 庭園石 ¶

말 그대로 정원에 장식용으로 놓는 돌. 그냥 돌이니 주변에서 대충 주워다 쓰면 되겠지 싶겠지만, 무단으로 돌을 훔쳐다 쓰는 것도 엄연히 절도죄에 해당한다. 때문에 대부분 석재상에서 돌을 구입해서 쓰게 된다.

화강암이나 편마암 등의 아름다운 무늬가 있고 비교적 내구도가 강한 돌들이 정원석으로 선호된다. 좋은 정원석은 한 트럭에 수십~수백만원까지도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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