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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James Edward Rice

생년월일

1953년 3월 8일

국적

미국

출신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앤더슨

포지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1년 드래프트 1라운드 15번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1974~1989)

1978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로드 커류
(미네소타 트윈스)

짐 라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

돈 베일러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대 주장

칼 야스트렘스키

짐 라이스(????~1989) →

제이슨 배리텍

보스턴 레드삭스 영구결번

No.14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3. 선수 스타일
  4. 은퇴 이후

1. 개요 ¶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은 강타자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외야수. 보스턴 레드삭스의 2대 주장이며, 테드윌리엄스 - 칼 야스트렘스키의 뒤를 잇는 이른바 보스턴 레드삭스의 명예의 전당 좌익수 계보를 잇는 선수다.

통산 성적은 0.298 2452안타 382홈런 1451타점.

2. 선수 생활 ¶

1971년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1라운드 15번으로 지명되어 입단한 후, 마이너리그를 씹어먹고 1974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1974년 트리플A(AAA)에서 뛰면서 해당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 그 결과 1974년 확장 엔트리때 메이저리그 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1975년 신인으로서 풀 타임으로 뛴 첫 시즌에 0.309 22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면서 신인답지 않은 성적을 내면서 맹활약, 그 해 신인왕 투표 2위와 MVP 투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 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짐 라이스와 그 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프레드 린, 그리고 명예의 전당 포수인 칼튼피스크등의 대활약에 힘입어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기에 이른다.

하지만 정작 라이스는 PO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는데, 시즌 막판에 손목에 공을 맞고 부상을 당했기 때문. 선수 본인은 보호대도 풀고 뛰겠다고 우겼지만, 코치진의 만류로 인해 결국 PO 엔트리에 드는데 실패했고, 신예 강타자의 공백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스턴은 3승 4패, 단 한 끗 차이로 신시내티레즈에게 지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한다.

라이스의 최전성기는 1978년이었다. 1978년 163경기 전 경기[1]를 소화하며 0.315 46홈런 139타점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그 해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다. 1977년과 1978년, 1979년 3년 연속으로 총루타[2] 부문에서 리그 1위에 올랐는데, 이 기록을 가진 선수는 딱 하나, 전설적인 타자 타이 콥 뿐이었다. 특히 1978년에는 총루타가 400을 넘는 역대급의 성적을 찍기도 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20홈런 이상, 100타점 가량은 기대할 수 있는 팀의 주포로서 맹활약했다. 1983년에는 다시 39홈런을 쳐내면서 통산 세 번째 홈런왕에 등극하기도 했고, 1986년에는 20홈런 110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을 다시금 월드시리즈에 올려 놓았다.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 0.333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분전했지만, 역시 이 때도 보스턴은 뉴욕메츠에게 3승 4패로 지면서 결국 라이스는 은퇴할 때까지 우승 반지와는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되었다.

20/Jim+Rice.jpg](http://1.bp.blogspot.com/rxUB9tUup4/Smyz- nVwiDI/AAAAAAAAAHk/2O1paG2bkHc/s320/Jim+Ric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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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제법 유명한 장면은 위의 사진. 펜웨이 파크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볼보이가 공에 맞아 다친 것을 급히 뛰어나가 아이를 안고 응급처지를 위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덕분에 아이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창 때도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말년에 특히 무릎을 다치면서 고생했다. 무릎 부상 때문에 기량이 저하되자, 주전에서 종종 밀리곤 했다. 그런데 1989년 시즌 도중 자신의 타석에서 대타로 교체한 감독 조 모건[3]을 밀치는 대형 사고를 친다. 부상 때문에 예민해서 벌어진 일. 어쨌거나 부상 때문에 제대로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고,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벌어지자 1989년 보스턴은 그를 방출했고, 라이스는 그대로 은퇴했다. 다소 이른 나이인 만 36세였다.

3. 선수 스타일 ¶

1960년부터 시작된 투고타저의 흐름은 라이스가 뛴 시대에 살짝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라이스는 전성기 정말 폭발적인 타격을 선보였는다. 특히 그는 비교적 정교함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장타력을 보여줬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는다. 물론 0.350의 고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는 아니지만, 그가 20홈런을 11번이나 넘긴 홈런 타자인 것을 감안하면, 8번의 3할 타율 달성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기록이다. 전성기인 1977년과 1978년에는 200안타와 39홈런 이상을 모두 기록했는데, 이는 아직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나오지 않는 기록이다. 적어도 그가 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를 지배한 가장 강력한 타자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타자로서 약점을 꼽자면, 첫 째는 많은 병살타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 빠르지 않던 주력이 더 느려졌는지 병살타가 역대급으로 많은 타자다. 통산 315개의 병살타를 치면서 은퇴 시점에서 역대 3위에 당당히 랭크되었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그런 병살을 칠 수 있는 찬스에서 0.310의 준수한 타율을 기록했다는 점. 찬스에서 무기력하게 병살만 날리던 타자는 아니었다. 다른 약점은 볼넷이 적었다는 것이다. 삼진도 그렇게까지 많이 당하지는 않아서 공갈포 같은 이미지는 없었지만, 볼넷을 60개 이상 얻은 시즌이 딱 한 번 1986년 뿐이다. 덕분에 시즌 출루율도 그렇고, 통산 출루율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수비력은 괜찮은 편이라서 골드글러브를 탈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그린 몬스터를 뒤에 두고 펼친 것 치고는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준 편이었다. 송구능력도 좋아서 어시스트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

4. 은퇴 이후 ¶

은퇴 후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격 코치를 잠시 역임하기도 했다. 보사구팽 식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오래도록 뛴 팀과의 사이가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던 모양. 타격 코치로서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하는 선수라서, 출루 머신 타입과는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는 머니볼에서 스캇 해티버그가 짐 라이스의 코칭 스타일을 평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어쨌거나 그래도 무능하지는 않았는지 적당히 괜찮은 성과는 남겼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개고생하다가 간신히 15수만에 들어갔다. 한 마디로 말해 막차로 입성. 명예의 전당은 15년까지만 투표권이 주어지는데 마지막 투표에서 겨우 입성한 것이다. 그렇게 고생한 것에는 첫째 상대적으로 저조한 누적 성적이 한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400홈런도 못 넘기고, 2500안타도 못 넘겼으니까. 둘째로는 이 양반이 원채 기자랑 사이가나빴다. 사생활은 사생활이라는 신조를 가지면서 극성맞은 보스턴 언론과 한 판 뜨는 것도 불사한 타입이라서 기자들에게 찍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감독 밀치는 사건이 점수를 좀 까먹었다. 개인적으로는 팬들에게도 친절한 타입이라고 하지만, 팬이 명예의 전당 투표하는 것은 아니니...

그래도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만든 각종 명예의 전당 관련 지표는 모두 넘겼다. 투고타저가 누적 성적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변수였음을 적극 어필하고 동 시대의 최고의 타자였던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점차 표가 오르면서 결국 15수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입성 후, 그의 등번호 14번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이로서 보스턴의 역대 좌익수 라인 테드윌리엄스 - 칼 야스트렘스키 - 짐 라이스로 이어지는 명예의 전당 좌익수 라인이 탄생했다. 칼크로포드가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을까? 아마 안 될 거야. 매니도 약빨이었지? 안 될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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