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卦掌
Baguazhang
벽괘장과는 다르다 벽괘장과는!!

중국 나라 말기 탄생한 근대 중국권법. 흔히 태극권·형의권과 함께 3대 내가권으로 꼽는다.

내가권 가운데 난이도가 높아 익히기 까다로운 권법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무술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다른 무술의 동작을 봤을 때 응용법까진 몰라도 기본적인 용법은 얼추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팔괘장 기술은 하나하나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보지 않으면 뭥미 싶은 것들 뿐이라... 하물며 무술을 모르는 일반인이 보면 그냥 기괴한 댄스(...).

http://album.udn.com/community/img/PSN_PHOTO/shaolin/f_832216_1.jpg?width=18
0

[JPG external image]

용형천수장(龍形穿手掌)

Contents

  1. 개요
  2. 탄생
  3. 동해천의 제자들
  4. 계보
  5. 국내 전파
  6. 관련 항목

1. 개요 ¶

팔괘장은 허베이 성(하북성)의 무술가 동해천(1797~1882)을 시조로 삼는 무술로 그 역사가 매우 짧다.

팔괘이란 이름처럼 특이하게도 대부분 기술이 주먹을 쓰지 않고 장법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권법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특징이 여럿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주권(走圈)이라 불리는 팔괘장 특유의 단련법이다. 마치 탑돌이를 하듯 원을 그리며 계속 도는데, 거의 서서 도는 방식부터 아주 낮게 도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태극권은 투로에 형의권은 삼체식에 팔괘장은 주권에 (정수가) 다 있다'고 할 만큼 팔괘장에서 강조하는 기본기이다. 오죽하면 주권만 3년을 연습해야 가까스로 팔괘장에 입문한다고 할 정도.
때문에 높은 명성에 비해서는 의외로 전승자가 드문 무술이다. 어지간히 독한 사람이 아닌 이상 3년 동안 기본기 하나만가르친다면야 누구나 열받아서 때려치겠지(...)

독특한 보법과 영활한 몸놀림이 특징으로 상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항상 사각에서 공격-피정타사(避正打斜)를 기본 전술로 채택하고 있는 권법이다.

팔괘장 참고영상. 다만 이 영상은



우슈라 의식적으로 동작을 크고 예쁘게 하고 있다. 전통권은 좀 다르다.

팔괘장의 주권을 보고 빙글빙글 돌면서 싸우는 부드러운 권법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어디까지나 기본 수련일 뿐 실상은 다르다. 주권 수련을 통해 얻은 몸놀림을 갖고 싸우는 것이지 진짜 싸울 때 주권 돌거나 하진 않는다(...)복싱 선수가 싸움할때 줄넘기 하나염?. 막상 투로만 들어가도 강맹한 동작들이 많다.

2. 탄생 ¶

통설에 따르면 동해천(董海川)은 어려서부터 문무에 능했던 아버지에게 글과 무술을 함께 배웠고, 장성하여 무술을 연구하기 위해 남쪽 지방으로 약 10여년 세월동안 여행을 떠났는데, 이 과정에서 안휘성 구화산에서 배웠던 권법이 팔괘장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북경체육대학원 강과무(康戈武)는 연구를 통해 동해천이 여행 초기 번자권을 배웠고, 남방 도교의 단련법인 전천존(轉天尊)을 접한 뒤 주권을 도입하고, 팔괘 사상을 결합해 창안한 권법이라고 밝혔다.

동해천은 무술을 대성한 뒤 느닷없이 내가고자라니 내시가 되어 왕부에 들어간다.
철 모르는 어린 나이에 거세한 것도 아니고, 성인 더구나 무술 고수가 갑자기 내시의 삶을 선택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악덕 관리를 살해한 까닭에 관의 추적을 피했다는 설도 있고, 반청복명 세력의 사주를 받고 암살자가 되어 잡임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오랜 세월동안 무술과 무관한 내시 노릇을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전국구 고수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어느날 숙왕이 친구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었고 흥을 돋우기 위해 휘하 고수에게 무술 시범을 보이게 했다. 한참 관람하던 도중 차를 내오라고 했는데, 막상 동해천이 차를 내오자 몰려든 구경꾼들이 방해가 되어 숙왕에게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손에 쟁반 한손에 차주전자를 들고서 훌쩍 담을 뛰어넘어서 차를 바쳤다(...). 숙왕은 이 광경을 보고서 비로소 동해천이 고수인줄 알았고, 동해천에게 시범을 보이게 한 뒤 크게 만족하여 왕부의 경비를 맡겼다.

3. 동해천의 제자들 ¶

이후 동해천은 왕족도 가르치면서 유명세를 탔고, 왕부에 고수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문하생이 모여들었다. 동해천 사후 묘비에 이름이 오른 제자는 69명이다.
이 가운데 윤복(尹福) 정정화(程廷華) 송장영(宋長榮) 사계동(史計棟) 마유기(馬維祺) 유봉춘(劉鳳春) 번지용(樊志涌) 양진보(梁振蒲)를 8대 제자로 꼽는다.

윤복 : 별명은 수봉(오래 사는 봉황).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소림 나한장을 하다 후에 북경에 와 동해천의 제자가 되었다. 만두장사를 했으며, 청수한 모습에 피부가 희고 체형이 여자 같아 말라깽이 윤이라 불렸으며 공력이 비범했다. 팔괘장을 자기에 맞게 고쳐 우설장(소혓바닥 장)을 사용했다. 우설장은 엄지를 구브리고 네 손가락을 펴서 딱딱한 장을 사용함이다. 후에 궁중에서 관리를 하며 많은 황족들에게 팔괘장을 가르쳤다. 1840년 생으로 69세로 사망했다. 원주를 소림권법 보법과 비슷하게 돌았다.

정정화 : 별명은 응방(당연히 좋은 향기). 어려서부터 씨름을 배웠으며 북경에서 안경점을 했다. 동해천 제자 중에 공력이 가장 으뜸이며 동해천과 기세가 가장 비슷하다. 팔괘장의 원래 이름인 '무극권요신팔괘연환장'을 했으며 원주를 많이 돌았다. 용장(용의 할퀴는 발톱처럼 움푹한 손모양의 장)을 사용했다. 팔형장을 낮은 자세로 연습했다. 원주는 동해천과 같은 탕니보를 했다. 정정화의 일화는 팔괘장에서는 가장 유명한 전설이다. 1900년 8월 14일 유럽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했을 당시 정정화는 단신으로 독일 군부대에 침입하여 수많은 병사들에게 맨손으로 수십 명에게 사상을 입히고, 마침내 독일 병사들에 의해 집중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 1848년생으로 이때의 나이 52세였다.

사기동 : 목공소를 했으며 여러 무술을 했다. 특히 발차기를 잘 했는데 동해천의 장법에 져서 제자가 된다. 탕니보 외에 학보, 닭보 등 발을 높이 들며 원주를 했다. 동해천 딸과 결혼하여 만년에 동선사와 같이 살았다. 많은 무기술을 팔괘장에 접목시켰다. 장은 검지, 식지 두 개를 곧게 세우고 엄지를 동그랗게 했다. 1835년생 73세 사망.

양진보 : 별명은 찬정(빛나는 팔각정). 동해천 만년에 사기동 집에 같이 거주하며 배웠다. 그래서 사파와 비슷하다. 제자 중에 가장 어렸으며 총명했고, 공부를 잘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창편해서 팔괘장을 세상에 잘 알렸다. 또한 무기술을 팔괘장에 접목시켰다. 1863년생 69세 사망.

장 점괴 : 본명은 아닌 듯하고 점괴라는 이름은 '점을 보는 기이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번개손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다. 형의권을 배워 팔괘장과 접목시켜 형의팔괘장을 만들었다. 정정화 방식으로 연습하여 그 기세와 공력이 정정화에 근접했다. 그의 제자 중에 강용초가 1920년대에 상해에서 팔괘장 책을 펴서 팔괘장을 세상에 알렸다. 1859년생 80세 사망.

류덕관 : 64수장(류씨직탕팔괘장). 장법을 위주로 하되 여러 무술의 장점을 팔괘에 맞추어 괘를 돌게 만들었으며 직선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연습하며, 한 수에 한 명씩 보내는 일타단수 방식이다.

이진청 : 음양 팔반장.

마귀 : 성격이 기이하여 일생 혼자만 연습하고 제자를 두지 않았다 한다.

번지용 : 별명은 번분자(번씨 성을 가진 미친 사람).

4. 계보 ¶

한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동해천 사후 팔괘장의 분파 과정이다.
어떤 무술이 파가 나뉘면서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을 보면 스승의 사후 친족과 수제자가 '내가 친아들/수제자니까 제대로 배웠음 너님은 야메'하고 다투는 패턴이 흔하다.
그런데 동해천은 고자내시라서 애당초 문파를 이어받을 아들딸이 없었다. 또한 제자를 받을 때도 생초짜 뿐만 아니라 이미 무술이 경지에 오른 인물들도 다수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들에게 굳이 한가지 가르침을 강제하지 않고 제자들의 경력에 맞춰서 가르쳤다. 때문에 제자마다 자신이 배운대로 특징이 명확히 갈렸고, 자연스럽게 파가 나뉘게 되었다. 일례로 사계동은 발차기를 잘했기 때문에 사파 팔괘장은 다른 팔괘장에 비해 발차기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다.

오늘날 팔괘장의 양대 주류라면 윤복의 윤파 팔괘장과 정정화의 정파 팔괘장이다.
윤복의 후인으로 궁보전[1].마귀 등이 유명했고, 정정화의 후인은 이문표.손록당[2] 양징보의 후인은 이자명이 특히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팔괘장은 팔괘문파의 장문인이란 개념이 아예 없고, 모든 교육과정을 다 마치면 X파 팔괘장 전인이 될 뿐이다..

5. 국내 전파 ¶

각종 서브 컬쳐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지명도가 듣보잡에 가까운 팔괘장이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화교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중국무술은 여럿이 있지만 크게 소림권, 당랑권, 팔괘장 세 부류였다. 특히 당랑권과 팔괘장은 중국에 대고도 고개 빳빳이 세울 정도로 적통이었다.
그중 팔괘장은 인천에서 화교 노수전(盧水田)씨가 전했기 때문에 '인천 팔괘장', '노파 팔괘장' 이라고 하는데, 노수전씨가 까막눈인데다가 생전에 족보드립을 좋아하지 않아서 귀동냥한 이름 몇몇과 자세를 놓고 어느 파의 팔괘장인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최근 추적 끝에 정파 팔괘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술한 정정화의 제자 이문표는 호가 경무(敬武)였는데, 노수전씨가 스승을 이경오(wǔ)-무의 중국발음-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생긴 논란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하는 팔괘장은 노수전 계열 정파 외에 양파가 있다.
정파는 한국팔괘장보존회 장의림, 의산체육관 안철균, 인천정무문 필서신.
양파는 대한팔괘장연구회 이만수, 서울팔괘장연구회 한병철.
역시나 대한민국에도 전승자가 드물다, 13억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팔괘장 전인들이면 제법 있는 거 아닐까?

6. 관련 항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