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氣道
한국의 무술.

윗 분은 대한합기도 협회 소속의 윤세권 원로이시다. 지금은 별세하셨다

Contents

  1. 개요
  2. 합기도와 아이키도(合氣道)의 관계

2.1. 최용술과 대동류합기유술

  1. 이런저런 단체운영 이야기
  2. 합기도 관련 인물

1. 개요 ¶

주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여 반격하는 기술이 주가 되는 호신술이란 개념을 갖고 있으며, 스탠딩 유술기 이외에도 태권도중국무술에서 유례가 된 발차기와 주먹기술 등도 있다. 또한 낙법과 기타 비상사태에 대비한 기술을 배운다. 다만 초창기 때에는 낙법이나, 허리 이상 올라가는 발차기가 없었다고 한다. 과격한 지도에 다치는 경우가 속출하자, 유도를 배웠던 초대 제자인 서복섭 씨가 자신이 배운 유도의 낙법을 도입한 것이라 한다.

한국어로 읽을 시 일본의 아이키도와 같은 한자음을 쓰며, 아이키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현재의 합기도는 아이키도와도 상당히 다른 고유의 무술로 변화가 되어있다.
맨손 또는 단도, , , 몽둥이 따위를 쓰며, 관절지르기와 급소지르기를 특기로 하는 호신술이다. 그 밖에도 단체나 사범의 취향에 따라 쌍절곤, 검, 등의 무기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있다.

합기도는 의외로 사람들이 자주 가지고 다닐 법한 도구들을 응용한 무기술들을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두가지를 꼽자면 바로 부채와 지팡이다.(다만 사망유희로 유명한 지한재씨는 지팡이술이나 부채술에 부정적이다. 부채술은 현 국술원회장 서인혁씨가 창조했다고 한다.)

사실 합기도의 진면목은 우슈만큼의 다양한 무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합기도는 전세계적으로 무려 다섯가지 분류의 방대한 양의 무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 분류의 무기술은 단(短) 무기술이고, 단검, 부채, 몽둥이가 있다.



두 번째 분류의 무기술은 중(中) 무기술이고, 지팡이, 단봉, 검이 있다.

세 번째 분류의 무기술은 장(長) 무기술이고, 봉, 창, 단창인데 왜 하필 長으로 분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이 있다.

네 번째 분류의 무기술은 연(連) 무기술이고, 밧줄, 사슬, 채찍이 있다.

다섯 번째 분류의 무기술은 암기술이고, 표창, 단검, 수리검이 있다.

사실 이 모든 무기술들은 서로가 연결되게끔 가르치는데, 대표적으로 검과 몽둥이의 연계라든가, 봉과 표창등의 연계가 있다.

위의 합기도의 무기술 중 가장 응용이 많은 기술은 단검이라고 할 수 있는데,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근거리(短)와 암기술로인한 장거리를 모두 커버 할 수 있는 만능 무기라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인지도가 뭔가 태권도에 딸려서 그런지 합기도의 실전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합기도의 맨손 기술은 사실 저 위의 소개 되어 있는 무기술들과 연계하여 쓰기 위해 만들어진, 말 그대로 냉병기의, 냉병기에 의한, 냉병기를 위한 유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 현재 꽤 대다수의 미군 부대들이 배우는 필수 수강 무술 중 합기도가 있다. [1] 일단, 스포츠화 된 태권도보다는 손기술에 비중을 더 많이 두므로 적어도 태권도보다는 실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태권도의 실전성 문제는 단순히 손기술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다. 단련과 성인부의 부재, 그리고 태권도만의 전술 시스템의 몰이해의 문제다.[2] 또한 사람들이 합기도의 실전성을 의심하는 건 인지도가 딸려서라기 보단 커리큘럼 상의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외국의 입장에서 볼때나 합기도의 인지도가 딸릴 수 있지만, 국내에서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는 무술, 격투기 중에서도 메이저 급에 속한다. 합기도는 태권도처럼 하나의 단일 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게 아니라서 단증만 해도 제각각이기에 A라는 합기도 단체에서 수련해서 딴 단증이 B라는 합기도 단체에서 수련시에는 인정되지 않는 등, 각각의 협회가 중구난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사범들의 수준도 천차만별. 잘 가르치는 데는 잘 가르치지만 야매로 하는 데는 안가느니만 못하다. 그리고 최용술 도주가 일본에서 배워온 야와라에 태권도의 발차기, 쿵후의 지당계나 킥이 혼합되어 종합무술화 되어버렸는데 바른 체계도 없이 이것저것 집어넣다보니 실상 사용하기엔 무언가 이상한 무술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합기도는 정체성부터 모호하잖아. 무술계의 분식점 합기도를 하고 싶다면 아예 격투기 쪽으로 방향을 돌린 도장이나 용술관, 정기관처럼 원형술기를 보존하고 있는 도장을 찾아가는 게 좋다.

다만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평도 있다. 합기도의 근본이 된 최용술 도주의 교육법은 한풀항목에서 말했듯 약간은 중구난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 단편적인 기술만 배우게 되고 기술에 부족함이 느껴져 타무술에 기술들을 끌어왔다는 것이다. 당시 무술계 풍토는 쎈놈이 갑이라는 풍조가 널리 퍼져서 언제나 실전을 엄두해 두었다. 그렇기에 기술도입도 자유로웠던것. 현 합기도 원로들도 최용술 도주가 가르친 것을 체계화(심지어 용술관 도주인 김윤상 총재도)했다고 말한다. 아마 배우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택견을 보고 있는 태권도인(당시에는 택견이 체계화가 안된 놀이로 치부했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합기도의 단검술은 악랄하기 그지없기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휴대성이 좋은 무기다 보니 의외로 사용법이 많이 개발되어서 그런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합기도의 단검술은 일본의 단도술 보단 우슈의 단검술과 유사점이 많고 매우 실전적이다. 단검을 던지고 그 다음 따로 준비한 다른 단검으로 파고 들어서 정수리를 내리찍거나, 눈을 후벼파거나, 고환을 찍거나, 불알킥을 날린 뒤에 수구리는 몸통에 척추를 끊거나 아예 목을 따버리는 등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술들이 많다...[3]라고 하지만 사실 유파가 다양하다 보니 기술난립이 심하다. 무기술 또한 단검투척술, 나이프술(응? 전통무술 아니였어?) 등 제각각인 등 공통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합기도 초기 합기도 관장들이 태권도와 중국무술과 교류를 하면서 생긴 기술의 혼합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가장 기초술기인 칼넣기[4] (팔꿈치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오는 기다란 뼈인 척골로 관절이나 급소를 지른다. 주로 팔꿈치 관절에 대고 지른다.)조차 방식이 다 다르다. 통합을 위해서 생각을 해야할 부분.

이런 다양한 수의 술기, 무기 등의 추가는 처음 최용술의 야와라 도장 당시에는 없었다 한다. 특히 성무관의 지한재를 중심으로 우슈식 발차기 라든가 화려한 낙법 등이 추가 되고, 점차적으로 여러가지들이 섞여 들어간 것.

한국식 합기도가 유파인 캐릭터로는 모탈 컴뱃스콜피온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쪽은 일본 닌자이다(...)

2. 합기도와 아이키도(合氣道)의 관계 ¶

양쪽 다 일본 고류무술인 대동류합기유술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별개의 무술이다.

대동류합기유술에서 아이키도, 혹은 합기도로의 계승관계에 대한 양측의 설명이 엇갈린다. 여기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만 해 두지만, 진실은저 너머에

2.1. 최용술과 대동류합기유술 ¶

최용술 도주의 경우 자신의 무술이 일본의 대동류합기유술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많은 논란 거리가 되어 왔다. [최용술 도주측의 주장. 해당 문서를 참조.](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ty395&logNo=1400563 78303&widgetTypeCall=true)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본의 아이키도측과 대동류측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측에서 지적하는 최용술 도주측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소개한다.

1. 다케다 소가쿠는 모든 수업생의 이름을 영명록에 기록해 두었는데 영명록 속에 대동류를 배운 다른 한국사람들의 이름도 있었지만 최용술 옹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우헤시바 모리헤이는 혼자 배웠던것이 아니며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 선생 및 요시다(吉田)가의 부자 [6] 등 다른 수련생들도 같이 수련했으며 그 증언들도 존재한다.

최용술측은 1번의 문제에 대해서 영명록의 일부가 훼손되어서 그 내용에서 사라졌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오랜기간 수제자로 있었는데 그 많은 기록중에 조금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볼때 최용술측의 주장에 무리가 있으며, 또한 진짜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가와 유키요시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다케다 선생과 함께 다녔지만 그 기록들이 전부 남아 있다는것이 위의 주장의 허구성을 더욱 강하게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합기'라는 단어는 합기도가 등장했다고 하는 1960년대 이전에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었으며 이를 증명할만한 증거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다. 합기라는 단어는 일본에서도 대동류나 합기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적어도 에도시대부터 여러 무술 유파들이 써왔던 단어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발행된 무술서적에서도 충분히 합기라는 말을 찾아볼수 있으며 아이키도의 존재 또한 한국에 충분히 알려져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7] 우에시바가 1936년에 이미 '무도'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 그전부터 아이키도의 존재와 합기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최용술이 직접 감수한 '합기술'이라는 책의 132페이지 부터는 자신의 과거 수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信洲市 信洲山에 1913년부터 8년간 입산 수행하였다고 되어있는데 信洲市 信洲山이란 곳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이 기간에 다케다 소가쿠는 홋카이도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때 우에시바가 1915년 대동류의 면허개전을 받게 된다. 또한 이 기간동안의 영명록의 기록은 확실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아이키도에서 말하는 다케다 소가쿠와 우에시바의 만남은 우에시바가 당시 홋카이도 개척사업을 이끌고 있었고 그곳의 책임자였으며 또한 무술에 조예가 깊었던 터라
근방에 유지였던 사가와(佐川)가와 요시다(吉田)가에서 손님으로 머물고 있었던 다케다 소가쿠를 모시고 와서 가르침을 받은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최용술의 증언은 어린 나이인 9살에 일본인 부부의 양자가 되어 일본에 왔다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고 14세에 다케다 소가쿠에게 다시 맡겨져서 8년간 입산 수행했다고 주장하는데 적어도 일본에서 그렇게 오래 계셨다는 분의 저서에서 지역명 등이 전혀 맞지 않는것도 주장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진다.|}}
더불어 초창기 최용술은 자신의 무술을 야와라(柔)[8]라고 불렀으므로, 실제로는 최용술은 일본에서 대동류와는 별개의 다른 유술을 배우고 들어왔으나,[9] 홍보를 위해 자신의 무술에 대동류를 끌어다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다만 이는 당시 국내에 대동류 합기유술이란 이름의 무술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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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4292는 단기 4292년으로 서기 1959년에 해당한다.

헌데 미국의 저명한 무술가 리처드 킴이 1984년 미국 합기도인 글렌(Glenn)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용술이 일본의 극우파 조직 흑룡회의 맴버이자,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 로 부터 교수대리(敎授代理)[10] 를 받은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郞)의 뛰어난 제자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다.[11] 최용술 도주의 일본 이름이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 였다고... 이 때문에 일본 위키백과에서는 최용술을 요시다 코타로 쪽의 제자로 분류하기도.

219x300.jpg](http://www.martialartstoronto.ca/wp- content/uploads/2012/09/SenseiKimImage3-219x3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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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리처드 킴, 그리고 오른쪽이 요시다 코타로다.

흑룡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위키러를 위해서 말하자면, 제국주의 일본의 국가주의 우익조직으로, 일본 제국이 헤이룽장(흑룡강) 일대를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라서 흑룡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이들은 대한제국의 식민지화에 적극 앞장섰고, 일진회를 배후에서 조종하였으며 이후,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조선인 학살을 주도하는 등 내선일체라면서? 어따 갖다 버렸어?의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 무술계에서는 최용술이 해방된 [12] 고국에서는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3. 이런저런 단체운영 이야기 ¶

단체가 난립하고 있는데다 역사도 제각각으로 주장하지만, 그 원류는 최용술 도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태권도, 해동검도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도장을 볼 수 있는 무술로써 자칭 궁중무술, 십팔기 등을 내세우는 곳도 있을 만큼 분파가 엄청나게 많다. 분파 많기로는 해동검도와 함께 국내 탑을 달릴 정도이며 개중에는 화랑도처럼 해외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정착하는 분파도 있다. 분파가 워낙 많은 관계로, 단체의 난립과 정체성의 모호함, 외국 단체(특히 일본)의 압박 같은 것들이 보여진다. 우린 안될꺼야 아마

대표적으로 대한합기도총연맹이 대한체육회 인정단체 지정을 취소당했던 이유는 단체의 통합이 되지 못해서이다.
2008년 1월, 합기도 단체를 통합한다는 조건 하에 인정단체가 되었지만, 3년만인 2011년 2월에 조건 미달로 승인이 도로 취소되었다. 산하단체 인정단체 승인 취소는 KOC 창설 이후 최초의 일이다. 야신난다!

반면에 태껸공수도 단체도 협조를 통해 2007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격됐다. 합기도의 경우는 10여개 이상의 합기도 단체가 난립하면서 서로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통합의 가능성은 중동평화의 가능성 수준이 되었다. 답이없다.

최근에 아이키도(대한합기도회)에서 대한체육회에 정가맹 단체로 가입할 움직임이 있어 그대로 이루어지면 합기도는 그대로 관광 당할 수도 있다. 태권도올림픽 종목이 된 후 가라테가 사실상 올림픽 종목으로의 가능성이 막힌 것을 생각해보자.

4. 합기도 관련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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