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劍道

Contents

  1. 역사
  2. 대한검도와의 대립
  3. 현황
  4. 해동검도의 수련

4.1. 검도와 해동검도의 차이점

4.2. 정통성 논쟁

4.3. 실전성 논쟁

  1. 관련 사건

1. 역사 ¶

해동검도는 한국의 현대 창작 무술로, 1980년대 경에 배우 겸 무술인인 나한일과 김정호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동검도 측에서는 고구려의 사무랑(士武郞)이란 무사단체에서 만들었다,[1] 장백산의 스승에게서 배웠다 등등의 기원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나한일과 김정호가 벌이던 이권다툼이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지면서 결국 해동검도가 자신들의 창작물이었음을 다 폭로하면서 한국 고유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캐치 프레이즈는 죄다 뻥이었음이 드러났다.[2] 나한일 오프라인 사건< /del>

실제로 서라벌 고등학교 동창이던 나한일과 김정호는 고등학생 시절 1970년경에 서울 신당동에 있던 심검도 호법총관에 입관하여 심검도 창시자 김창식 관장에게 심검도를 배웠다. 심검도는 김창식 관장이 창안한 유파이고, 김창식 관장은 당시 화계사 주지였던 숭산스님의 제자였다. 김창식 관장이 미국으로 이민가자 나한일은 심검도 도장을 인수하는데[3], 운영 부진으로 1977년경 폐관한 뒤 김정호의 소개로[4] 기천문 문주 박대양으로부터 기천문을 배운다. 나한일은 1980년 초 현진영화사 김두원 회장의 후원으로 서울 서초동에 도장을 개관하는데, 박대양이 건물 임대 계약자로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기천문' 간판을 달겠다고 주장해서 갈등이 생긴다. 결국 박대양이 떠나고 도장은 '심검도 체육관'으로 개칭한다. 안양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김정호는 1982년 경 서초동 도장에서 다시 나한일과 합류, 도장 운영에 참여하고 나한일은 방송국 일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1983년 경 최태민 목사가 심검도 도장에 참여하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해동검도라는 도장 이름을 지어준 인물로 이야기된다. 현진영화사의 후원으로 운영되던 심검도 체육관은 현진영화사의 부도 위기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했고, 김정호는 나종균의 도움으로 1986년 서울 삼성동에 해동검도도장을 세우고, 나한일은 해동검도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나한일과 함께 해동검도 보급에 나선다.

해동검도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각자가 말이 다른데, 1982년에 경기도 안양시에서 김정호가 운영하던 도장이 "해동검도체육관"이었다는 주장, 1984년 경 서초동 심검도 도장에서 배우던 최태민 목사의 제안에 따라 해동검도를 상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 삼성동 해동검도도장이 조금씩 엇갈린다. 하지만 김정호가 1961년경 소위 장백산 스승으로부터 우리 전래의 검법을 전수받았으며 이 검법을 해동검도라고 통칭한다는 주장은 김정호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2. 대한검도와의 대립 ¶

해동검도는 1989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에게도 검도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생 도장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무풍지대가 인기를 끌던 시절, 탤런트 나한일은 무풍지대의 주인공 유지광 역을 맡았다. 드라마 상에서 방영된 체력단련과정이나 검도 장면이 바로 해동검도였다. 이것이 알려지자 해동검도에 찾아오는 사람이 늘게 된다.

뿐만아니라 나한일은 방송에서 자신이 검도 7단의 유단자라고 소개했는데, 유사검도에 대해 이전부터 신경질적인 대응을 해오던 대한검도회에서 1989년 6월 경 나한일을 사이비검도교습소운영 및 검도 7단 사칭으로 고소했고, 나한일은 자신이 해동검도협회 소속이고 검도는 보통명사인 데다가 해동검도 7단이므로 대한검도회와는 무관하다고 맞고소 및 대한해동검도협회에서 발급한 단증을 제출하여 혐의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었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해동검도가 홍보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웃기는 것은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된 것이 1989년 5월이라는 점. 협회 시작하고 한달만에 7단인 셈이다.창시자는 보정되나?

3. 현황 ¶

1989년 대한해동검도협회가 조직되고 탤런트 나한일의 이름값 덕분에 전국의 여러 도장이 해동검도도장으로 간판을 갈고 대한해동검도협회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난립하던 유사검도 도장들과 협회들은, 원래 검도를 간판으로 걸고는 싶었으나 유서 깊고 그만큼 도장 인가도 쉽게 내주지 않는 깐깐한 대한검도회 밑에서는 몇 년을 해도 장사판(도장)을 벌일 수가 없으니 너도나도 자기네 유사검도 도장과 유사검도협회를 차린 것인데, 해동검도가 드라마 무풍지대 덕분에 인기폭발이었으니 그 쪽으로 상호교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대한검도회가 쉽게 수를 늘리지 않아서 유사단체를 난립하게 만들었다면, 해동검도는 너무 쉽게 수를 늘려서 문제가 되었다. 협회에 수많은 도장들이 가입을 해오자 가입비용과 협회 운영을 놓고 대한해동검도협회의 수뇌부끼리 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91년 경 나한일은 '해동심검도협회'를 만들어 분열해나갔다가 1992년 다시 대한해동검도협회로 복귀, 하지만 또다시 1992년 경 분열되어 나간 도장끼리 한국해동검도협회를 차리자 나한일이 한국해동검도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래서 현재는 크게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와, 김정호의 세계해동검도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분리가 계속되어 국제해동검도연맹, 도법해동검도회, 한국전통해동검도협회, 해동심검도협회 등등 수십개의 단체로 사분오열된 상태다. 심지어 사범 등록비만 내면 인가를 내준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는만큼, 제대로 된 도장을 찾기도 어렵다.

4. 해동검도의 수련 ¶

한마디로 나한일과 김창호가 심검도 도장에서 배운 심검도의 검술을 기반으로, 기천문의 수련법을 따와서 창작한 것이 해동검도다.

해동검도에서 수련하는 검법은 시대가 흐르고 협회가 갈라서면서 자주 바뀌는데, 1984년 출간한 ≪해동검법개론≫에서는 심상검법, 쌍수도, 예도, 본국검법, 장백검법, 쌍검, 격검이 나와있다. 이것이 해동검도의 기본으로 보면 된다. 해동검법개론은 나한일 편저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김정호가 쓰고 직접 시연을 해보인 것이며 나한일은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인다.

1994년 한국해동검도협회에서 출간한 ≪해동검도-검도의 원류와 검법≫에는 쌍수검법, 심상검법, 예도검법, 본국검법, 장백검법,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방검법, 좌공검법, 와검법, 몽복검법, 비연검법, 쌍검법, 참선검법이 등장,

1999년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서적≪ 해동검도교본≫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본국검법, 선공검법, 쌍검법, 좌검법, 천강검법, 명상검법, 해동검법이 등장.

2005년 한국해동검도협회 정관에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 예도검법 1~9,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이 나와있다.
현재 세계해동검도에서는 쌍수검법 1~12, 심상검법 1~4, 예도검법 1~9, 본국검법 1~7, 장백검법 1~7, 음양검법 1~7, 태극검법 1~7, 해동검법 1~7, 쌍검검법 1~7을 가르치고 있는듯 하다.

참고로 세계심검도협회의 술기로 선방검법 1~20, 선공검법 1~16, 좌방검법, 좌공검법, 와검법, 와우검법, 와좌검법, 와복검법, 참선검법, 몽복검법, 몽검법, 비연검법, 도검법, 검투검법, 심검법이 있다. 이로 미루어볼때 해동 일부 계파에서 하고 있는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검법, 천강검법, 명상검법 등은 심검도의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심검도는 중도 크기의 칼을 한손으로 사용하는 검술이며 양손으로 검을 다루는 기법은 없다. 나한일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심상검법, 본국검법은 나한일과 김정호가 함께 만든 것이며, 쌍수검법은 나한일이 만들었고, 본국검법무예도보통지를 보고 김정호와 나한일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해동검도의 본국검법은 대한검도회의 본국검법과 그 기원은 같으나 실제 내용은 다르다. 무예도보통지 복원 검술이 다 그렇듯이 단체마다 해석과 재현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은 본국검법의 재현도에 있어서는 대한검도회 측의 재현 또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말못한다. 대한검도회는 자신들이 하는 일본 검도의 검리에 맞춰 왜곡하는 경향이 몹시 강하기 때문이다.

해동검법개론을 보듯이 해동검도의 주요 술기는 김정호가 만들었으며 처음 만들었을때 심상, 쌍수, 예도, 본국, 장백, 쌍검 등인데, 초창기에 갈라져나간 나한일의 한국해동검도 계열에서는 김정호의 해동검도의 검법을 전부 익히지 못했다보니 모자라는 기술을 심검도의 선방검법, 선공검법, 좌검법 등으로 메꾼 것 같다.

내가신장, 소도세, 복호세, 대도세, 개운기공 같은 수련법들은 기천문의 수련법이다. 검술 자체는 심검도를 기초로 쌍수검술로 창작해낸 것이고, 수련기법은 기천문에서 따왔다고 보면 되겠다.

대한검도가 대련과 타격을 중요시 여기는 반면에, 해동검도는 검법 형 수련 위주로 한다. 신문지 베기나 촛불끄기 같은 퍼포먼스도 많이 한다.

탤런트 나한일 씨의 촛불끄기 시범.

해동검도는 형 수련을 중심으로 하고 대련 시스템이 없다보니, 대련 노하우가 없어서 혼자서 칼춤추는 것에 가깝다. 대련으로 붙으면 해동은 압도적으로 발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대련 시스템 없이는 검술에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해동 쪽에서도 호구[5]``[6]와 죽도 대련을 도입하는 도장이 늘고 있는듯 하다. 이처럼 해동검도 일선 관장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다양한 부분에서 타 무술의 체계나 기술을 흡수하여 보완하려는 시도가 많다.

현재의 해동검도는 진검 짚단베기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죽도 위주의 검도와 비교우위를 내세우는데, 사실 해동검도 초창기의 베기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해동검도의 베기 기술이 좋아진 것은 대한도법협회의 이영식 씨와 교류하면서 이영식 씨로부터 베기를 배운 제자들이 해동검도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이영식 씨는 진검 베기를 추구해서 검도계의 원로들로부터 검술을 배우고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의 책을 독학으로 연구하다, 결국 나카무라 다이사부로와 직접 만나고 초빙해와서 배우는 등 베기술 쪽으로 연구가 깊은, 한국 검도계에서 보자면 매우 기이한 경력의 인물이다. 그래서 이영식씨의 베기 기법은 호산류와 나카무라류 발도도를 원류로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영식 씨로부터 배운 노대래, 김은정 씨 등의 해동도법검도회나 싸우라비도법연구소 쪽 사람들이 해동검도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해동검도의 짚단베기가 일본식 시참, 타메시기리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라는 인물은 2차대전때 중국에서 일본 토야마 육군병학교의 군도 사용법을 기반으로한 거합도, 즉 후대에 토야마류(戸山流)라고 불리는 것을 가르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격하게 말하자면 토야마류는 2차대전때 난징대학살 하던 왜놈 검술이고,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는 중국 민간인을 시참하면서 자신의 토야마류의 실전베기 기법을 닦아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를 창시했다. 한반도 전통 검도를 자칭하는 해동검도가 대일본제국시대 검술의 정수랄수 있는 토야마류, 나카무라류의 진검베기술을 충실히 흡수한 셈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현재는 거합을 배워 포함시키거나, 아주 일부이지만 프랑스에서 지팡이술인 깐느를 배워온 경우도 있고, 스포츠 찬바라를 도입하거나 나카무라류의 방계인 발도도 용성검 등과 교류하기도 한다. 그외 여기저기서 다양한 무술들을 참고해서 부족한 컨텐츠와 검리의 보완에 매진하는 듯. 반대로 말하자면 해동의 컨텐츠 자체가 검리적으로 부실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4.1. 검도와 해동검도의 차이점 ¶

해동검도의 수련 항목에서 보다시피, 검도와 해동검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름에 검도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검도는 무술의 갈래라기보다 그 단어 자체가 하나의 스포츠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으므로 해동검도를 검도에 포함시키기는 힘들다. 그냥 해동검도는 해동검도, 검도는 검도. 각각 별개의 무도 스포츠로 받아들이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도를 해동검도와 구분해서 이야기 할 때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단체명에서 따와서 '대한검도'라고 부른다. 대한검도 측에서는 검도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명사라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에 따르면 일본에는 검도 이외에도 도도(刀道), 거합도 등 검술을 중심으로 하는 무술이 많고 고류검술도 아직 남아 있는 실정인데 검도가 보통명사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이,검도 항목에서 보듯이 검도라는 단어 자체는 한자문화권의 공통된 표현이고, 고유명사였다가 보통명사가 된 사례들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근거로 든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 검도라는 단어가 이미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검도라는 단어를 독점적인 고유명사로 보기 힘들다고 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검도라는 단어가 반드시 고유명사라고만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할 것이다.

4.2. 정통성 논쟁 ¶

대한검도회 검도 수련인들이 매우 싫어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해동검도가 대외적으로 고구려 타령 하면서 사기를 친다는 것이 그 이유.

역으로 해동검도 측에서도 대한검도회를 일본검술, 왜놈검술이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이 전통무술 행세를 하기 때문에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해동검도의 대단한 마케팅 때문에 대한검도회가 그 세력을 많이 잃어버리고 체육관 수입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초딩을 많이 빼앗겼다고 한다. 초딩은 상상 이상으로 수입을 많이 안겨주는데, 도복과 목검 등의 기초 장비부터 해서 매달 꼬박꼬박 수련비를 내고, 승급심사를 볼 때마다 추가로 수입을 안겨주는 꿀단지(?) 같은 존재다. 태권도장이 동네 곳곳에 있는것도 이런 원리. 사실 이렇게 시장을 빼앗겼기 때문에 대한검도가 해동검도를 곱지 않게 보는 것일지도. 그러나 대한검도는 아저씨, 아줌마로 이루어진 중년층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그리 신경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점이 깨져서...

하지만 위에서 말했다 시피, 해동검도의 역사는 이미 법정에서 증명이 완료되었다. 현대에 만들어진 창작 무술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 무술이라고 주장하기는 곤란하다. 처음부터 신흥무술이라고 주장했다면 모를까.

4.3. 실전성 논쟁 ¶

최소한의 제대로된 대련방법 체계도 잡혀있지 않는 해동검도이기 때문에 실전성에 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해동검도는 검도가 죽도 검술이고 베기에 쓸모가 없으니 실전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검도는 제정 거합과 같이 수련하도록 권하고 있어서 원래 그정도는 아닌데, 대한검도회에서는 거합도를 왜색이 짙다고 금하는 바람에…

물론 진검대결의 벌어질 경우 누가 이기는지 알 수 없다. 법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목검이나 죽도를 사용하는 대련과 실전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검이나 죽도 대결의 경우, 해동검도의 수련자는 거리 조절 감각자체가 잡혀 있지 않기에 상대방에게 십중팔구 두들겨 맞게 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오랜기간 갈고 닦고 내려온 대련체계의 부재 때문이다.

심지어 전통도 없고 창시자가 현대인이라 실전 경험 따위는 있을 수가 없으니, 무술이 아니라 그저 칼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는 폐간된 무술전문 잡지인 마르스는 2002년 7/8월 호에 의하면 해동검도는 몸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지 않고 팔만 움직이며 엉덩이는 뒤로 빠지게 되는 즉, 어린 아이들이 칼싸움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하도 많이 시켜서 짚단을 잘 자른다! 넌 하루하루 짚단 자르는 기계에 불과해 근데 짚단 잘 잘라서 뭐하게

해동검도 도장에 견학을 가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BB탄총 준다고 해서 온 초, 중학생인데다가 칼은 든 상태에서의 구르기, 주먹질 등을 가르친다. 자기네들은 칼이 없을 때도 싸울 수 있다고 실전성이 좋다고 하지만 초등학생 해동 유단자 검 실력의 깊이는 스포츠 찬바라만도 못하다.

검도를 까느라 혈안이 되었던 해동이 검도vs해동 삼대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5. 관련 사건 ¶

2000년 7월 1일 10시 10분, 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에서 술에 취한 해동검도 사범(박모씨, 21, 해동검도 4단)이 부인과 통화를 하면서 욕설을 하던 행인 이모씨(41)가 자신을 욕하는 줄 알고 진검을 휘둘러서 이모씨의 팔을 잘라버린 (정확히는 오른쪽 손목과 왼팔을 자르고 머리와 복부에 20cm가량의 상처를 입힘. 일명 '해동검도 월아천충사건' 이라고 불린다) 사건이 있었다. 이후 박모씨는 해외로 도주하려다가 [9일 경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 d=sec&sid1=102&oid=005&aid=0000011246). 해동검도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힌 사건이라 아직도 가끔 뉴스 댓글에 보인다. 해동검도 지못미. 부부싸움하다가 팔잘린 이모씨도 지못미.

이 사건에는 애프터 스토리가 있는데, 검도사범 박모씨는 평소부터 자기과시욕과 피해망상이 심각하여 평소에 자동차에 진검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주변에 벨만한 것이 있으면 아무거나 베고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 정신병으로 판결났고, 팔을 절단당한 이모씨의 부인과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 부인은 합의금을 받자마자 잠적했다고 한다.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부인과 싸운 이유는 부인의 외도….

이모씨는 팔의 봉합수술까지는 했는데 신경이 전부 죽었고, 그게 다시 썩어들어가서 결국 [다시 절단했다고 한다](http://media.dau 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060912182841719&p=m_daum).
양팔을 절단당하고도 합의금으로 합의를 보려 한 이유는 이모씨의 생계가 매우 안좋았기 때문인데, 아내가 합의금 갖고 도망간데다 자식 둘을 혼자 키워야하니 참으로 안습.

그리고 2010년 1월 9일, 한 해동검도계열 관장이 자신의 여제자가 남자친구와 교제하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남자를 도장으로 불러 훈계를 하다 진검을 뽑아 배를 찌르고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참고로 여제자와 남친은 둘다 당시 17세 미성년자였다.

2010년 3월 18일, 한국해동검도협회의 수장인 나한일은 불법 대출과 자금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나한일은 6월 16일 5억원 갈취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 id1=106&sid2=221&oid=001&aid=0006961993).
이런 난리들이 잇따라 벌어지는 바람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동검도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사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해동검도측도 책임이 없다고 할수 없는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나 도장차리게 해주었기 때문에 칼가지고 다니다 사람 팔자르고 홧김에 처음보는 아이의 배나 찌르는 정신병자 혹은 정신수양 덜된 사람들이 관장이랍시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저런 사단을 냈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28일 해동검도 수련자가 진검을 들고 시민을 추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해동검도 수련자의 진검으로 인한 공격사고라는 점에서 저번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

관련: 격투기 무술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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