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能 (638 ~ 713)

중국 선종(禪宗) 불교의 육조(六祖)이다.

영남의 신주 출신(현재의 중국 광동성)으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를 듣고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했다.

불교에 귀의하기 위해 오조 홍인(五祖 弘忍)이 머무르던 풍무산에 찾아가 절의 행자로서 8개월간 나무꾼 일을 하고 불경을 들으며 생활했다. 홍인은 자신을 받아주길 청하는 혜능에게 "남만인이 어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라고 물었고, 이에 혜능은 "불성에 남만의 구분이 있습니까?" 라고 대답해서 행자로 머물 수 있었다.

하루는 홍인은 의발[1]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송을 지어오게 했는데 제자 중 가장 깨달음이 깊었던 신수(神秀)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벽에 붙였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라
부지런히 털어내어
먼지 일지 않게 하리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홍인은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신수의 게송대로 수행할 것을 명하면서도, 정작 신수에게는 따로 "문턱에는 이르렀으되 이를 넘지는 못했다." 라고 평했다.

이를 본 혜능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그 아래에 붙였다.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이를 본 오조 홍인은 다른 제자들이 혜능을 해할까 "이 게송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하면서 이를 지운 뒤, 밤에 그를 불러 의발을 전하니 혜능은 그날 밤으로 절을 떠났다. 다음 날 의발이 혜능에게 넘어갔음을 알게 된 제자들은 격노하여 혜능을 추적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2]

그리하여 선종은 이후 신수를 중심으로 한 북선종과 혜능 문하의 종단인 남선종으로 갈리었다.

혜능의 이야기와 그의 설법을 엮어 책으로 낸 것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